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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역학서언(상)
글쓴이
정약용 저
출판사
학고방
출판일
2026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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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정약용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책 소개

분야인문
정조 대왕과 박아(博雅)한 선비들과 함께 실천하고 싶었던 연구 프로젝트

“아아! 내가 선대 대왕(정조)의 치세에 태어나 마침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빛나는 듯한 때여서 바르지 못한 설은 도깨비불처럼 숨었었다. 만약 선대 대왕의 웅대한 계책을 힘써 도와 대업을 빛나게 넓혀 『십삼경주소』를 취하여 왕필의 『역주』를 배척하면서 이정조의 『주역집해』를 특별히 취해 『주역』의 주석으로 삼고, 박학하고 고아한 선비들을 모아 의소를 지어 그 결함을 보완했다면, 어찌 성왕의 큰 공훈이 아니었겠는가! 때를 놓치고 말았으니 이제 와서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눈을 감지 못할 한(恨)이로다!” -『역학서언』 「왕보사역주론」 중에서

정약용은 정조(正祖)와 박아(博雅)한 선비들과 함께 『십삼경주소』를 토대로 한국 역학인 의소(義疏) 편찬을 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恨)으로 여겼다. 그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를 정약용은 유배 시절과 해배 시기에 걸쳐 홀로 그 한(恨)을 감내하며 혼신의 힘을 쏟아 2천 년이 넘는 중국역학사를 비평한 『역학서언』을 저술한 것이다. 『역학서언』은 정약용이 정조 대왕과 함께 이루고자 했던 학술적 이상을 담은 저술이며, 이를 홀로 감당한 연구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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