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쩌면 내가 피하고 피하다 남은 마지막 세상
[밤이 아니므로]는 전형철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으로, 「잎이 가시가 되는 동안」 「삼보」 「밤이 아니므로」 등 45편이 실려 있다.
전형철 시인은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으며, 2007년 [현대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고요가 아니다] [이름 이후의 사람] [밤이 아니므로]를 썼다. 조지훈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연성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때 검은 무당의 춤사위는 아름다웠다. 전형철의 첫 시집에 펼쳐진 신비로운 둔갑술과 환골탈태한 언어의 다채로운 생명력은 정말로 “지상에서 추는 가장 아름다운 춤”이었다([고요가 아니다]의 해설). 누군가에게는 분명 시적인 영험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뒤에 두 번째로 상재하였던 시집에서는 형상의 구체성보다 말의 무게에 치중하며 이른바 낭만적 시인으로서 시적 세계를 구현하였다. 이는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우리의 실존적 낭만성”으로 확장되며 더욱 단단해졌다.([이름 이후의 사람]의 해설) 그렇다면 이번 세 번째 시집 [밤이 아니므로]는 어떠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시집에서 주술의 힘은 휘발되었고, 밤하늘의 천문을 읽어 나간 시선은 땅에 줄곧 머물 때가 많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두 번째 시집 [이름 이후의 사람]에 마지막으로 실린 「신의 사슬」로 예견된 바였다. 제목만 보더라도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는 듯했다. ‘사슬’이 신을 향한 굳건한 믿음, 신앙적 결속만이 아니라, 결국에는 과감하게 끊어 내야만 하는 족쇄처럼도 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문득 “나의 얼굴은 바닥의 소유”였음을 무연히 바라보면서, 그 시선은 밤하늘에서 내려와 이내 바닥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장한 마음을 한 “가장 낮은 자의 배후”를 배웅했던 것은 북쪽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결빙의 바람”)이었다. 밤하늘에 별을 좇던 눈은 이제 완전히 땅바닥에 고정된 채로 “하루를 어떤 무늬로 새겨 넣을 것인가”를 골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혀끝에서 “다시 소환할 수 없는 주문(呪文)”이 차가운 바람을 따라 휘발되고 스스로 제 이름(무당)조차 지키지 못했음을 자책했는지도 모른다.
「신의 사슬」은 길게 이어져 이번 세 번째 시집 [밤이 아니므로]의 「북벽」으로 이어졌다. “버려진 허공에 잘못 든 길이 생기는 동안”에 신의 응답은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정작 내 “옆구리”에서 생의 진실이 피어나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존재들의 울음과 눈물이 자신의 “곁이 무너지는 이유”라는 것을 알았고, 눈앞에 놓인 “저녁 술잔”에 휘청거리면서 또 다른 길목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땅에서 발을 딛고 있으니 도술이 아닌 스스로의 보폭으로 고독한 여정을 떠나야 했다. 이렇듯 「북벽」에서 바람에 얽어맨 마음의 향방은 신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자의 외로움과 고독의 그늘을 헛헛하게 남긴다. 좌중(座中)의 배치는 인간의 영역에서 행하는 것이지 신의 일이 될 수 없다. 운명의 행방이 어디가 될지 알 수 없었고, 지금 당장 길 위에 살아가야 할 몸에 “미리 연습한 기억” 따위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북벽」). (이상 정재훈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