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해야 할 너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는 일
그것뿐이다”
돌멩이 곁에, 죽은 자 곁에
나란히 앉아 부르는 이름
애도의 말은 대개 앞으로 나아가라고 재촉한다. 슬픔을 정리하고, 마무리 짓고,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김지숙 시인의 시집 『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는 그 재촉을 거절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시인은 첫머리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기억해야 할 너의 이름을//나지막이 부르는 일/그것뿐이다”라고 쓴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부르는 일. 이 시집은 그 무력하고도 집요한 호명의 행위를 끝까지 밀고 나아간다.
시인이 부르는 이름은 결코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연인」의 민수는 부를 때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난 너의 무덤이 될 거야, 넌 나의 묘비명이 될 거야”라는 고백으로 화자와 뒤섞인다. 「인형의 집」과 「앨리스의 세계」를 넘나드는 앨리스는 “왜 나를 구해 주지 않는 거지?”라는 결핍의 물음을 스스로 “영혼”이라 부르며 자라난 아이다. 표제 구절이 담긴 「슈퍼 블루문」에서 시인은 “우리는 그 모두에게 잊혀도 좋지, 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라고 노래한다. 세상 전체에게 잊혀도 상관없다는 이 체념은 역설적으로 오직 한 사람에게만은 끝까지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의 가장 깊은 이면이다. 시인은 이름을 남기고 사라진 이들과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스러진 이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가 미처 다 슬퍼하지 못한 수많은 죽음이 시집 안에서 비로소 나란히 제자리를 얻는다.
『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는 섣부른 위로를 건네며 슬픔을 매듭짓는 대신 슬픔 곁에 온전히 머물기를 택하는, 위로를 유예하는 시집이다. 문이 열릴 때마다 자신과 겹치고 부서지는 얼굴을 좇는 「카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처럼 시인은 상실을 서둘러 정리해 치워 버리는 대신 그 아픔 곁에 조금 더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한다. 시집의 마지막에는 “우리 없는 자리마다/흔들리고 있는/풀들”이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사람은 떠나도 그가 지나간 자리는 여전히 흔들림으로 남는다는 것, 김지숙 시인은 그 남겨진 흔들림을 아주 오래 들여다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언어로 우리를 부재의 곁으로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