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곁에서 삶을 배웁니다
“잎이 피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식물을 잘 키우는 법보다 식물 곁에서 달라진 마음을 이야기하는 에세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 식물』이 출간됐다. 플랜트숍 ‘서서히’를 운영하며 수업을 하고 식물로 공간에 온기를 더해 온 한진아 작가는 식물을 돌본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서 오히려 삶을 마주하고 사람을 배우며 자신을 알아갔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화분 앞에 오래 머물렀던 날,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풀 한 포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바람, 식물을 사이에 두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식물을 이야기하지만 사람을 향하고, 자연을 말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비춘다.
식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언제나 잘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과한 물과 잦은 자리 이동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아무 변화가 없는 화분 앞에서 초조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실패와 기다림을 감추지 않는다. 식물은 조급함으로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돌봄에는 상대의 속도를 살피고 기다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워 간다.
하루 종일 수많은 식물을 돌보면서도 “집에는 식물이 없습니다”라고 털어놓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집을 비워 둠으로써 다시 식물을 반갑게 맞이할 마음을 남겨 둔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을 오래 사랑하려면 때로 거리를 두고 숨 쉴 여백을 마련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식물의 변화는 빠르게 드러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움직임이 없는 동안에도 뿌리는 자리를 잡고 잎은 빛을 향해 방향을 바꾼다. 작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시간을 견디며 보이지 않는 성장과 각자의 속도를 믿는 법을 배운다. 봄의 새순과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의 비움과 겨울의 기다림을 따라가는 글은 비교와 성과에 익숙해진 우리의 걸음을 잠시 늦춰 준다.
식물과 오래 일한 작가의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식물의 이름보다 사람들의 얼굴이다. 식물 하나를 사이에 두면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자신의 계절을 이야기한다. 새순을 보며 기뻐하던 표정과 작은 잎 하나를 상하게 했다고 미안해하던 마음, 완성된 화분보다 함께 웃었던 시간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식물을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는 고백이 책 전체를 따뜻하게 관통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식물』은 식물을 돌보는 일이 그 곁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만나는 과정임을 보여 준다. 초록을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에 지친 사람에게도 조용한 쉼표가 되어 줄 책이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도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식물처럼, 우리도 자신의 속도로 삶의 계절을 건너가도 괜찮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