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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간은 왜 추상하는가
글쓴이
서수연 저
출판사
부크크
출판일
2026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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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미술
추상화를 처음 마주한 사람은 흔히 묻는다. 무엇을 그린 것인가. 이 질문은 틀리지 않다. 다만 추상회화는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꾼다.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지웠는가, 무엇을 끝까지 남겼는가, 그리고 남은 것들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묻는다. 나무가 사라진 뒤에도 수직과 수평이 남을 수 있고, 얼굴이 사라진 뒤에도 긴장과 온기가 남을 수 있다. 서사가 사라진 뒤에는 물감의 속도와 몸의 흔적이 전면에 나타난다. 추상은 빈자리가 아니라 남겨진 것들의 새로운 질서다.

인간은 미술관에서만 추상하지 않는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수많은 차이를
하나의 개념 안에 묶는다. 지도는 땅의 냄새와 바람을 지우는 대신 길과 거리를 남긴다. 숫자는 사물의 색과 무게를 버리는 대신 양의 관계를 남긴다. 돈은 서로 다른 노동과 욕망을 하나의 교환 단위로 바꾼다. 기억도 추상한다.

한 사람과 함께한 수천 시간을 몇 장면과 몇 문장으로 압축한다. 우리는 세계를 그대로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고, 줄이고, 분류하고, 다시 연결한다. 추상은 현대미술의 특수한 발명이기 전에 인간이 세계를 감당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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