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 있어
밀면 열려”
부딪치고 밀려나며 서로의 온도를 확인하는 존재들
문을 밀면 시작되는 하얀 마음의 공동체
문학동네시인선 254번째 시집으로 조해주 시인의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를 펴낸다. 전통적인 등단 제도를 밟는 대신 첫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로 한국 시단에 도전적인 첫발을 내디딘 시인은 두번째 시집 『가벼운 선물』(민음사, 2022)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언어가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를 선연히 펼쳐 보였다. 그후 사 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듯한 무심한 표정의 그가 처음으로 꺼내 보인 작은 소망 같다.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고 제안하던 시인의 산뜻한 용기를 기억한다면, 혹은 그에게서 건네받은 선물로 하루를 무사히 지나 보낸 적 있다면, “발 디딜 곳 없이 헤매다가 하얀 네모 안으로 들어가 쓰러지면 그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라고”(「보이지 않는 물」, 70쪽) 말하는 시인의 얼굴이 퍽 반가울 것 같다.
시집을 열면 “한 문장 때문에 긴 여행을 떠나게 된 사람의 이야기”(「고양이가 그려진 종이」), 즉 성실한 매일을 발판 삼아 여기에 도착한 시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긴 여정에는 이렇다 할 표지판이나 안내서가 없다. 여타의 시집과 달리 부의 나눔 없이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낯설다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잠시 접어두고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 차분히 걸어보기를 권한다. 시인의 의도대로 “멈추지 않고 한 번에 걸어가”(‘미니 인터뷰’에서)봐도 좋고, 시편들 사이로 출몰하는 ‘새’나 ‘공’을 쫓아 읽거나, ‘식당’이나 ‘공원’을 찾아가는 색다른 재미를 누려봐도 좋다. 그가 차근차근 부려놓은 “이야기에 푹 빠지면 어느새/ 창밖이 달라져 있”(「사람이 없는 시간」)을 것이다. 그때엔 창밖으로 나가 자신만의 풍경을 그려보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