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지역론은 1990년부터 학술지 및 전문지에 기고 및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4부로 편집 구성하였다.
1부는 1790년부터 1815년까지 프랑스 혁명과 지배의 영향 아래 남부 이탈리아(나폴리·시칠리아 왕국)에서 전개된 반봉건개혁의 실상과 한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영주권 폐지와 교회 토지 매각 등 제도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으나, 실질적인 수혜자는 신흥 토지 부르주아지인 ‘갈란뚜오미니’와 보상을 챙긴 구영주들이었으며 농민들은 오히려 공동체적 권리를 잃고 소외되었음을 구체적인 사례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도입된 중앙집권적 행정군주정 체제와 공직을 통해 성장한 갈란뚜오미니의 정치 세력화가 훗날 이탈리아 독립과 통일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2부는 1790년부터 1870년까지 이어진 이탈리아 통일운동(리소르지멘또)을 단순한 민족 부흥이 아닌 ‘부르주아 자본주의 변혁’의 시각에서 심도 있게 파헤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근대국가 형성의 단초를 읽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1820년대 나폴리혁명과 카르보네리아, 마찌니의 청년이탈리아 운동 등 통일 주체들의 이념적 갈등과 농민 연대 실패의 과정을 추적하며 온건파 주도의 ‘위로부터의 통일’이 이루어진 배경을 설명한다. 나아가 통일 이후 주도권을 쥔 북부에 의해 남부가 어떻게 야만적이고 전근대적인 ‘타자’로 발명되고 폄하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획일화된 남부 이미지의 해체와 역사적 맥락의 복원을 시도한다.
3부는 통일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정치·사회의 핵심 화두인 중앙과 지방의 관계, 그리고 지역주의의 실체를 다룬다. 국가 해체를 우려해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채택했던 초기 단일국가 시대부터, 1990년대 유럽연합 가입과 헌법 개정을 거치며 본격화된 지방분권화의 역동적인 흐름을 추적한다. 북부동맹의 노골적인 분리주의와 남북 간의 극심한 재정 격차 등 분권화가 낳은 현실적 딜레마를 짚어보는 동시에, 전통적인 남북 이분법을 넘어 강소기업 중심의 ‘제3의 이탈리아’와 다양한 소수 언어·문화가 공존하는 이탈리아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새롭게 규명한다.
4부는 로마, 리보르노,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해항도시들이 품은 역동적인 해상 네트워크와 문화적 잡종성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바닷길을 통해 제국의 팽창과 통합을 이룬 로마의 물류 시스템, 17세기 자유항 특별법을 통해 쇠퇴하는 베네치아를 대신하여 다문화가 공존하는 이상적 중개 도시로 번성한 리보르노의 사례를 대비하여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베네치아의 대표적 해양축제인 ‘바다와의 결혼’이 지닌 역사적 기원과 상업적 진화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오늘날 지역사회의 해항도시 축제가 나아가야 할 정체성 확립과 시민 참여의 방향성까지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