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의 뿌리, 땀과 피로 되살린 우리 형제의 기록
1. 묵묵히 흐르는 검은 물, 그리고 응축의 연대기
돌이켜보면 성급한 기대였는지 모른다. 본래 이 거대한 서사를 설계할 당시, 필자는 제3권에 이르러 여진의 위대한 태조 완안아골타가 대륙의 전면에 당당히 출현하여 거란의 요나라를 전율케 하는 비상의 순간을 그려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역사의 시간은 인간의 조급한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역사는 영웅 한 명의 돌출된 무용담이 아니라, 수 세대에 걸쳐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무섭게 압착되고 쌓아 올려진 '에너지의 응축' 과정이기 때문이다.
제3권을 마무리 지은 지금, 필자는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다가올 제4권에서도 여진의 기틀을 벼린 우구내(烏骨?)와 그 에너지를 마침내 폭발의 임계점까지 끌어올릴 핵리발(劾里鉢), 그리고 아골타 형제들의 치열한 발버둥을 고스란히 원고지 위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속도라면 대륙을 호령할 아골타의 본격적인 등장은 제5권이나 제6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할지도 모른다. 총 10권이라는 한정된 예산과 분량 안에 발해의 뒤를 이은 여진의 그 장대한 역사를 빠짐없이 다 담아낼 수 있을지, 솔직한 심정으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급함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여진 완안부의 시선에 동화되는 순간, 필자는 깨달았다. 지금은 힘을 숨기고 기르는 응축의 시대다. 완안석로의 시대를 지나 우구내의 시점까지 이르는 이 지루하고도 엄혹한 응축의 세월이 정밀하게 기록되지 않는다면, 훗날 핵리발 체제에서 터져 나올 폭발적인 격동과 아골타의 신화적인 비상은 한낱 개연성 없는 허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진도가 더디다는 세간의 염려 속에서도, 묵묵히 검은 물의 가장 깊은 뿌리를 파고들 수밖에 없다.
2. 사라진 사료, 왜곡된 행간을 복원하는 사가의 숙명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전유물이며, 때로는 비겁한 자들의 변명으로 점철된다. 후대의 사가들은 금나라를 야만과 약탈의 무리로 격하시켰고, 그들이 대륙의 패권을 쥐기까지의 과정들을 철저히 난도질하거나 소실시켰다. 아골타가 고작 수천의 군사로 거란의 수십만 대군을 물리친 그 기적 같은 승리의 과정이 역사서에 명확히 기술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화주의에 사로잡힌 사가들은 변방의 여진이 이룩한 고도의 정보전, 치밀한 외교적 수수께끼, 그리고 맹안모극이라는 완벽한 군사·행정 통합 시스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잃어버린 옛 기록의 파편을 모아 당시의 진실을 되살리려는 작업은, 오늘날 필자와 같은 역사학자에게 너무나도 고달프고 외로운 형벌과도 같다. 사료의 공백을 개연성 있는 역사적 상상력과 문명사적 법칙으로 채워 넣는 매 순간순간이,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필자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3. 7월의 전장, 배고픈 작가의 고독한 투쟁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잔인한 폭염이 몰아치는 7월 말이다. 에어컨 한 대 없는 비좁은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려 원고지를 적신다. 더위를 이기지 못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찬물에 몸을 담가 보지만, 문을 열고 나오면 어느새 다시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뜨거운 열기에 입맛은 완전히 달아나, 밥을 입에 넣어도 그것이 모래알을 씹는 것인지 도대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오로지 둥근 수박 한 통을 붙잡고 그 차가운 물로 배를 채우며 텅 빈 위장을 달래는 것이 이 여름을 버티는 필자의 유일한 생존 방식이다.
밤이 되면 고통은 육체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낡은 창틀 사이로 밤마다 떼를 지어 들어오는 모기들의 습격으로 인해, 필자의 온몸은 검은 반점처럼 거뭇거뭇한 상처로 뒤덮였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몹쓸 병에 걸린 환자마냥 검은 점들이 듬썩듬썩 박혀 있으니, 과연 이것이 사람이 사는 정경인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시장의 냉혹함은 창밖의 더위보다 더 차갑다. 한 달에 불과 몇 권도 팔리지 않는 책의 판매 지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작가라는 인생이 얼마나 쓸쓸하고 고달픈 것인지 뼈저리게 실감한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최소한의 구휼미로 겨우 목숨줄이나 연명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처지다. 문화의 힘이 위대하다고 가르치지만, 국가와 사회의 제도적인 뒷받침과 예산의 보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 명의 작가가 위대한 문명을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온몸으로 통감하고 있다.
4. 양업의 천명, 그리고 여진이라는 우리 형제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지옥 같은 폭염 속에서도 펜을 놓지 못하고, 온몸의 진액을 짜내어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필자가 이번작에서 영혼을 바쳐 그려냈던 송나라의 명장, 양업(楊業)의 최후와 닮아있다. 양업은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고 배신한 유약한 송나라 조정이었음에도, 스스로 그 신의를 배신하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 우직하고 비장한 최후는 양업 개인의 선택이 아닌,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천명(天命)'이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 배고프고 고달픈 작가의 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변방의 역사를 복원하는 이 길은 필자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천명이다.
우리가 여진의 역사를 똑바로 마주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이 결코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진은 고구려와 발해의 대지를 공유하며 신라와 발해의 피를 이어받은, 역사 속에서 격동의 세월을 함께 살아낸 '우리 형제의 이야기'다. 형제의 잃어버린 영광과 눈물을 닦아주고, 장막 뒤에 가려진 그들의 위대한 응축과 비상의 에너지를 온전히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폭염 속에서도 필자가 살아 숨 쉬는 유일한 이유다.
땀과 피, 그리고 굶주림 속에서 벼려낸 이 3권의 기록이, 시대를 뚫어보는 안목을 지닌 독자들의 가슴에 차갑고도 뜨거운 격류로 흘러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부디 강건하게 이 역사의 여정에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
2026년 7월 30일 방구석 폭염의 전장에서, 통혜(通惠) 유승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