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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파도의 문장을 읽는다
글쓴이
박상건 저
출판사
b(도서출판비)
출판일
2026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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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박상건 시인의 시집 『등대는 파도의 문장을 읽는다』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섬 여행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집에는 60편의 시가 5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시집 제목 『등대는 파도의 문장을 읽는다』는 시인의 시 세계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등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고, 파도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시인은 그 파도의 문장을 읽어내며 섬과 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시로 받아 적는다. 이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가르치고 기억을 품으며, 상처 입은 존재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하나의 생명체에 가깝다.

시집 곳곳에서 파도는 부서진다. 그러나 부서짐은 끝이 아니다. ?파도가 무인도에게?에서 “파도는 안다 / 홀로 서는 일이 얼마나 긴 숨결인지”라고 말하듯, 파도와 섬은 서로의 고독을 알아본다. 파도는 부서지면서 아픔을 흩어놓고, 다시 밀려온다. 이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서 시인은 삶 역시 상처와 회복을 거듭하는 과정임을 바라본다.

이 시집에서 섬은 고립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기억의 공간이다. 제부도, 청산도, 금오도, 백령도, 독도, 마라도 등 수많은 섬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여행지의 목록이 아니다. 섬마다 사람들의 노동과 기다림, 이별과 귀환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어머니의 바다?에서는 바다에서 일하던 어머니의 삶이 한 그릇의 음식 속에까지 스며들고, ?청산도?에서는 아버지의 삶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자식의 마음이 바다의 기억과 겹쳐진다. 그렇게 바다는 개인의 추억을 넘어 한 세대의 삶을 기억하는 장소가 된다.

그 중심에 등대가 있다. ?등대에게 길을 묻다?에서 등대의 존재 이유는 “너의 길동무가 되는 일”이라고 표현된다. 등대는 앞장서서 길을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을 내어 길을 잃은 존재가 스스로 방향을 찾도록 돕는다. 그래서 이 시집의 등대는 희망을 상징하면서도 과장된 구원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묵묵히 곁을 지키는 동행이며,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는 마음의 불씨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인이 고독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섬은 “끝내 혼자이고 싶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고독은 단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 서 있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상처를 견디며, 내면의 빛을 발견하게 한다. ?고독이 빛을 밝힐 때?의 등대처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존재의 힘이 이 시집 전체를 흐른다.
마지막에 이르면 파도와 등대, 섬과 인간은 하나의 문장으로 겹쳐진다. ?등대섬 물보라 끝에서? 시인은 부서지는 물보라 사이로 내려앉는 등대의 빛을 바라보며 “다시, 첫 문장을 쓴다”고 말한다. 삶은 한 번 쓰이고 끝나는 문장이 아니라, 상처와 고독을 지나 다시 시작되는 문장이라는 뜻일 것이다.

결국 『등대는 파도의 문장을 읽는다』는 바다를 노래한 시집이면서, 바다를 통해 인간의 삶을 읽어낸 시집이다. 파도처럼 흔들리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돌아오는 삶, 섬처럼 홀로 서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이어져 있는 삶,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작은 불빛 하나를 지키는 삶.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오래 바라본 뒤 조용히 받아 적는다. 파도가 들려주는 삶의 문장을, 등대의 불빛처럼 오래 남는 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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