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말을 하고 싶으면 신음 소리를 내면 된다 아니면 눈짓으로
[깅아지]는 박순원 시인의 여섯 번째 신작 시집으로, ?봄? ?비곗덩어리? ?깅아지? 등 53편이 실려 있다.
박순원 시인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고, 2005년 [서정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 [주먹이 운다] [그런데 그런데] [에르고스테롤]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깅아지]를 썼다.
[깅아지]의 화자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의 머리는 비어 있고, 한때 스스로 ‘봄’이었던 시간은 지나가며, 배는 비만하며 하체는 부실하고 꼬리는 짧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리고, 통장은 마이너스이며,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먹는다. 직장에서는 그만두라는 신호를 받는 것 같고, 사회에서는 대체 가능한 자원과 소비자와 고객으로 관리된다. 그는 ‘힘껏’ 살다가 ‘정도껏’ 살고, 때로는 ‘까짓것’ 하며 술을 마신다. 다음 날에는 다시 비타민을 먹고 보험을 든다. 이러한 모순과 흔들림이 그를 이루는 삶의 진실이다.
언어도 그와 닮았다. 박순원의 말들은 완전한 의미와 단정한 문장을 향해 곧장 나아가지 않는다. ‘메롱’은 ‘메론’으로, ‘아픔’은 ‘슬픔’으로, ‘발랄’은 ‘지랄’로 미끄러진다. 글자들은 따로 놀고 서로에게 기대며, 규칙에 따라 줄을 섰다가 다시 맥락을 벗어난다. 이 어긋남 속에서 ‘깅아지’와 ‘깔’처럼 이전에는 없던 존재가 태어나고, 사라진 사람과 동물과 사물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 시집의 제목인 ‘깅아지’는 시인 자신의 희화적 별명처럼 읽히며, 그의 시가 붙잡고 있는 모든 불완전한 존재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확장된다. 강아지보다 조금 모자랄 수도 있고, 강아지를 뛰어넘을 수도 있으며, 강아지와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존재. 기존의 분류에 온전히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가능성을 품은 존재가 ‘깅아지’다. ‘깅아지’는 잘못 태어난 말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생명이다.
세계는 사람과 사물의 쓸모를 판단하고, 불필요해진 것들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언어 역시 정상적인 말과 잘못된 말, 의미 있는 말과 쓸모없는 말로 나뉜다. 박순원의 시는 그 경계에서 밀려난 존재들을 불러 모은다. 버려진 ‘부지깽이’는 도깨비가 되고, 의미 없던 ‘깔’은 한 편의 시가 되며, 사라진 ‘은주들’은 찰랑거리고 찬란했던 빛으로 돌아온다. 덜 떨어진 말들은 서로 기대어 쓰러지지 않고, 그렁그렁 눈물을 품은 채 “아무튼 튼튼”하게(?메롱메롱?) 살아남는다.
이 시집 [깅아지]는 불완전함을 제거하는 대신 그것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 준다. 조금 모자라고 우스꽝스러운 몸으로 자신을 웃고, 어긋난 말로 굳어진 의미를 흔들며, 곧 사라질 것들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 본다. 그것이 박순원의 시가 세계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견딤 속에서 자조는 웃음이 되고, 웃음은 풍자가 되며, 풍자는 마침내 약한 존재들을 품는 연민의 언어가 된다.
(이상 황정산 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