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의 나에게 주고 싶은 책
1994년 봄, 충남 대산. 현대석유화학 대산공장
1992년, 나는 인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했다. 배를 설계 하는 법을 배웠고, 재료역학과 유체역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2년 뒤 인 1994년, 현대그룹 공채에 합격했다.
첫 발령지는 충남 대산의 현대석유화학 대산공장 공무팀이었다. 공무팀은 수백 대의 펌프, 압축기, 열교환기, 배관 등 공장 설비를 관리하는 팀이다. 공장이 멈추지 않도록 설비를 점검하며, 고장이 나면 수리하고, 정기 보수 일정을 관리한다. 엔지니어의 세계였다.
나는 그 세계가 좋았다. 도면을 펼치고, 설비 앞에 서서, 손으로 직접 확인하는 일. 현장은 살아있었고, 문제가 눈에 보였으며, 해결 하면 바로 결과가 나왔다.
4년이 흘렀다.
어느 이른 아침 출근 길, 정문을 들어서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장이 작아 보인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대산공장은 분명 큰 공장이었다. 광활한 바 다를 메워 뻘 위에 콘크리트 파일을 박고 다시 그 위에 공장을 지었 다. 하지만 4년을 같은 설비, 같은 공정, 같은 문제 앞에서 보내다 보니 나는 이미 이 공간의 끝을 알고 있었다.
더 넓은 곳이 있을 것 같았다. 더 복잡한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아직 모르는 세계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한 선배가 말했다.
“구매 쪽은 어때? 거기는 공장 밖을 봐야 해. 세상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