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았다는 것은, 정말 많이 이해했다는 뜻일까.
일흔한 살의 윤세진은 자신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삼십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쳤고, 서른세 권의 책을 썼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직장인으로 책임을 다했고 수많은 사람에게 삶에 관한 답을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는 오래전 자신이 적어 두었던 검은 노트 한 권을 다시 발견한다.
그 안에는 젊은 날의 자신이 언젠가 어른이 되면 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108개의 질문이 남아 있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는가.나는 누구의 질문에 답하며 살아왔는가.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돈을 잃으면 인간의 존엄도 사라지는가.도움을 받는 것은 패배인가.용서받지 못하더라도 사과할 수 있는가.그리고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살아왔는가.
세진은 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나고야에서 오십 년 전 펜팔 친구의 흔적을 찾고, 보스턴에서는 자신이 포기했다고 믿었던 삶과 마주한다. 함부르크에서는 직함이 사라진 뒤의 인간을 바라보고, 바라나시에서는 죽음 앞에 서며, 케랄라에서는 누군가를 돌보고 또 돌봄을 받는다는 의미를 배운다. 앙코르의 폐허를 지나 포르투와 산티아고를 걸으며 그는 자신의 늙어가는 몸과 오래된 자존심까지 피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세진에게 부족했던 것은 답이 아니라 듣는 일이었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내의 선택을 대신 결정했고, 아들을 걱정하면서 그의 실패를 평가했으며, 딸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믿으면서 허락 없이 자신의 글에 담았다.
그는 타인의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해석과 교훈으로 바꾸어 버렸다.
마침내 세계를 돌아 서울로 돌아온 세진이 마주해야 하는 곳은 산티아고보다 훨씬 가까운 장소다.
아내와 자녀가 있는 식탁.변명하지 않고 사과해야 하는 자리.용서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 일.
108개의 질문에 답하려 떠났던 한 사람은 여행의 끝에서 새로운 공책을 펼친다.
그리고 백아홉 번째 질문을 적는다.
“나는 내일도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가?”
《108개의 질문을 들고 떠났다》는 세계여행을 그린 노년의 성장소설이면서, 가족과 사랑, 돈과 죽음, 기억과 기록, 사과와 용서에 관해 묻는 인간 탐구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책을 덮은 독자에게 자신의 삶으로 가져가야 할 질문 하나를 남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