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38년, 한나라의 젊은 사신 장건(張騫)은 흉노를 견제할 동맹을 찾아 서쪽으로 떠났다. 그는 목표했던 대월지(大月氏)와의 동맹을 이루지 못한 채 13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지만, 그가 가져온 것은 동맹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페르가나의 명마, 서역의 포도와 자주개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저 너머에도 사람이 산다"는 확신.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훗날 19세기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붙인 것이지만, 그 길 자체는 이름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장안에서 시작해 하서주랑을 지나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을 돌아, 파미르 고원을 넘고 중앙아시아의 초원과 오아시스를 지나 페르시아와 로마에 닿는 이 길은, 처음부터 하나의 완성된 도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인에서 상인으로, 대상(隊商)에서 대상으로 이어지는 무수한 짧은 구간들의 연쇄였다. 장안의 비단이 로마 귀족의 몸에 걸쳐지기까지, 그 비단을 직접 나른 단일한 상인은 없었다. 대신 수십 개의 손을 거치며, 각 구간의 상인들이 자신이 아는 만큼의 세계를 서로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