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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여행기 1 타쉬켄트, 히바 천년의 시간을 걷다.
글쓴이
송근원 저
출판사
BOOKK(부크크)
출판일
2026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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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건강 취미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이번에는 좀 천천히 다녀오자.

유명한 곳 몇 군데만 보고, 맛있는 것 먹고, 사진이나 실컷 찍고 돌아오자.

그런데 막상 길을 나서면 계획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아니, 이번에는 출국 수속을 밟는 순간부터 이미 여행이었다.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달려가고, 낯선 나라의 공항에서 헤매고, 몇 백 원짜리 지하철을 타면서도 혹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닌지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우즈베키스탄이다.

중앙아시아 한가운데 자리한 이 나라에는 내가 평소 책에서만 보아왔던 이름들이 곳곳에 살아 있었다.

첫 목적지는 타쉬켄트였다.

오래된 이슬람 유적과 현대적인 도시가 묘하게 어우러진 타쉬켄트에서 하즈라티 이맘 광장의 경건함을 만났고, 초르수 시장에서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흥정 속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을 타고 도시를 누비면서는 단돈 1,700숨으로 떠나는 엉뚱한 지하철 유람도 경험했다.

도시를 벗어나니 풍경은 또 달라졌다.

팔타우 폭포의 물소리를 듣고, 차르박 호수의 푸른 물빛을 바라보고, 아미르소이의 꽃길을 걸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땀을 흘리다가 산속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니,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히바행 야간열차에 올랐다.

어둠 속으로 달리는 기차는 또 하나의 여행이었다. 창밖으로 무엇이 지나가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어둠 때문에 앞으로 만나게 될 도시가 더욱 궁금해졌다.

밤을 달려 도착한 히바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흙벽과 푸른 타일, 높이 솟은 미나레트와 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사이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아침이면 새벽빛이 성벽을 타고 내려왔고, 해가 지면 황금빛 조명이 성벽과 미나레트를 비추며 낮과는 전혀 다른 도시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유적만 본 것이 아니었다.

골목을 걷다가 문득 오래전 이곳을 걸었을 사람들을 생각했고, 오래된 건물을 바라보다가 그곳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했다.

유물도 말을 하고 골목도 말을 했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흙벽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 하렘의 흔적에서는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삶을 떠올렸고, 푸른 타일 앞에서는 천 년의 시간이 어떻게 하나의 색으로 남을 수 있는지 생각했다. 칼타 미나르의 푸른빛 아래 서 있을 때는 오래전 이곳을 다스렸던 사람들의 꿈과 욕망이 아직도 그 벽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렇게 히바의 골목을 걷다 보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시간이 느려졌다.

아니, 어쩌면 내가 시간에서 잠시 벗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천 년 전의 건축물 옆을 오늘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오래된 성벽 아래에서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는다. 과거와 현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자리에 겹쳐 있었다.

그곳에서는 천 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고, 골목 하나를 돌아서면 과거의 누군가와 마주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비로소 이 여행의 제목을 마음속에 떠올렸다.

천년의 시간을 걷다.

여행은 결국 장소를 옮겨 다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잠시 빠져나와 다른 시간과 다른 삶을 살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고, 오래된 성벽을 바라보고, 천 년 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잠시 그들의 시간과 연결된다.

그렇다고 이 여행이 늘 진지했던 것은 아니다.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하기도 했고, 편하게 올라가겠다고 계단을 놔두고 엉뚱한 길을 선택했다가 된통 당하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아무리 유서 깊은 유적도 잠시 뒤로 밀려났다.

결국 역사보다 배꼽시계가 더 위대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역사와 작은 일상이 한데 섞이는 것.

천 년 된 성벽을 바라보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밥 먹고 갑시다!”라고 외치는 것.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감탄하다가도 사진 한 장 제대로 찍겠다고 한참을 서성이는 것.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런 소소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그래서 이 책에는 유명한 유적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때로는 무엇 때문에 당황했는지도 함께 담았다.

여행은 지나고 나면 결국 추억이 된다.

사진은 그때의 모습을 남겨주지만, 글은 그때의 마음을 남겨준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길을 걷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타쉬켄트의 골목에서 시작하여 하즈라티 이맘 광장과 초르수 시장을 지나고, 팔타우 폭포와 차르박 호수, 아미르소이를 거쳐 밤 기차에 몸을 싣고 히바로 향했던 길.

그리고 마침내 이찬 칼라의 성벽 안으로 들어가 천년의 시간을 걷던 순간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먹었던 음식들, 웃었던 순간들, 더위에 지쳐 쉬어갔던 시간들, 오래된 흙벽과 푸른 타일 앞에서 문득 멈춰 섰던 생각들까지.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여행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여행에서 만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그동안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래된 도시를 걸으며 과거를 만났고, 그 과거를 바라보면서 오히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니 이 책은 우즈베키스탄의 관광 안내서가 아니다.

그저 한 여행자가 타쉬켄트에서 히바까지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작은 기록이다.

때로는 역사보다 배꼽시계에 충실했고, 때로는 뜨거운 햇볕에 지쳤으며, 때로는 오래된 성벽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기도 했던 한 나그네의 이야기다.

다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여행은 끝났지만, 여행에서 만난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 속 풍경을 다시 바라보고 그때의 글을 다시 읽는 순간, 나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장을 넘기는 독자 역시 잠시나마 그 길 위에 함께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자, 이제 타쉬켄트로 떠나보자.

천년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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