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11분, 소설가 대니얼 한에게 낯선 발신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첨부된 파일들은 하나의 보고서가 번역, 기계 분류, 인간 분석관의 평가, 요약 보고, 그리고 최종 정치적 승인을 거쳐가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보고서의 첫 문장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했다. 장비의 이동이 공격 준비 신호일 수도 있고, 예정된 훈련 후의 일상적인 해산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최종 브리핑에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적대적 의도’.
11분 뒤, 첫 번째 타격이 보고된다.
거짓말한 사람은 없었다. 각자 자신의 직무 범위 안에서 충실히 일했을 뿐이다. 대안적 가능성은 삭제된 것이 아니라 접혀진 필드 속에 묻혔다. 불확실성은 위조된 것이 아니라 쪼개지고, 표준화되고, 요약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보존된 것과 가시화된 것 사이 어딘가에서, 가능성은 ‘의도’가 되었고, 의도는 ‘임박한 위협’이 되었다. 그리고 ‘N’이라는 이니셜만 남긴 발신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수년 전, 대니얼은 재난 생존자들이 자신의 신원을 증명하고 구호 혜택을 받으며 가족과 재회할 수 있도록 돕는 정부 구호 신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 이민자 단속과 수사에 전용되는 것을 목도해야 했다. 그는 기록이 적을수록 위험에 노출되는 삶도 적어질 것이라 믿으며 업계를 떠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N이 보낸 파일들은 그 확신을 덫으로 뒤바꾼다. 판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입증하려면 대니얼은 그 궤적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N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흔적을 지워야만 할지도 모른다. 타임스탬프는 문서의 진위를 증명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위치를 특정하기도 한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록이, 역설적으로 그 진실을 폭로한 이를 찾아내는 가장 빠른 추적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니얼은 '대리인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대중적 선언, 즉 《제로 헌장(Zero Charter)》으로 맞선다. 선거가 앞으로 닥칠 모든 전쟁과 비상조치, 되돌릴 수 없는 결정에 대한 사전 동의일 수는 없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그 선언의 진위를 증명할 열쇠는 오직 대니얼 혼자만이 쥐고 있다. 타인을 대신해 결정하기를 거부했던 남자가, 그들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그들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민·난민 인권 변호사인 그의 딸 소피는 그 반대편을 본다. 쫓겨나거나 구금된 이들에게 서류 한 장에 적힌 이름은, 그들이 어디에 존재했는지, 어떤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 혹은 그들이 사라졌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입증할 유일한 증거일 수 있다. 기록은 감시의 족쇄가 될 수도 있지만 생명선이 될 수도 있다. 권한 위임을 종식시키는 것은 권력을 억제할 수 있을지언정, 권력이 실패했을 때 응답해야 할 책임자의 이름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위험이 눈앞에 닥쳤을 때, 모든 목소리를 기다리는 데는 가혹한 대가가 따른다.
『부재 조항(Absence Clause)』은 언어와 무력, 보호와 노출, 대의와 동의 사이의 통로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문학적 스릴러다. 이 소설은 손쉬운 악당을 지목하지도, 의문을 제기하는 시스템에 매끄러운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결정이 마치 '스스로 내려진 것처럼' 보일 때까지 서로의 권위를 빌려오는 인간과 기계의 판단 과정을 서늘하게 추적한다.
속도를 유능함으로, 망설임을 오류로, 침묵을 동의로 여기는 세상에서, 이 소설은 묻는다. 한 사회가 행동에 나서기 전 지켜내야 할 불확실성의 몫은 얼마인가?그리고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아무도 전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