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장편 소설 『순수』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순수』는 『쾌락』, 『죽음의 승리』와 함께 이른바 ‘장미 소설’ 3부작을 이루는 작품으로, 1892년 처음 발표되었다.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한 남자가 아내의 불륜과 임신을 알게 된 뒤 무고한 아기를 없애야만 한다는 집착에 시달리는 전 과정을 일인칭 고백체로 그리며, 사랑과 소유욕, 순수와 죄, 자기 기만과 도덕적 책임 등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1976년에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표범」 등으로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이탈리아의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가 영화화했다.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는 시와 소설, 희곡을 넘나들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탈리아 문학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감각적인 언어와 탐미적인 세계관으로 이탈리아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했으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연출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배경인 귀족적 인물들의 탐미적 욕망과 권태, 자기 파괴를 그려 내는 데 능했는데, 한편으로 당시 유럽 문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갖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탐독했다. 『순수』는 이러한 영향 아래 인간의 내면과 죄의 문제를 깊이 파고든 작품으로, 욕망과 질투, 죄의식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특히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정당화하는 주인공 화자의 논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리게 한다. 단눈치오는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자신의 탐미주의적 세계와 결합해, 사랑과 순수에 대한 갈망이 자기 기만과 폭력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