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숙 시인의 시집 『슬기로운 반려 생활』이 시작시인선 0573번으로 출간되었다. 한경숙 시인은 2019년 『딩하돌아』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가 있다.
한경숙 시인은 이번 두 번째 시집 『슬기로운 반려 생활』에서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비인간 존재까지 아우르는 ‘반려’와 환대의 상상력을 내보인다. 시인이 말하는 반려는 동물과 지구 생태계뿐만 아니라 도어락, 사물, 미세먼지 등 인간이 만든 문명의 사물까지 포함한다. 이는 기후생태위기 속에서 인간 너머 존재를 사유하려는 동시대 담론과 맞물려 있으며, 생태문학의 범주를 넓히는 시도이다. 시인은 멸종과 파국의 비극을 먼 세계의 일로 두지 않고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허문다. 몽돌과의 관계를 다룬 시처럼, 한경숙에게 반려란 단순히 대상을 돌보는 행위를 넘어 신체적 얽힘을 통해 이전과 다른 내가 되는 ‘존재론적 전환’의 사건이다. 비인간 존재를 반려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탄치 않으며 기존의 안온한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고통스러운 여정일 수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 인간은 무력감을 느끼고 문명 속에 안주하지만, 시인은 목소리 없는 존재들의 소리를 받아 적으며 무뎌진 감각을 일깨운다. 시집에 담긴 시들은 파국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미학적 특권을 통해 타자와의 윤리적 얽힘과 존재론적 전환을 감각하게 한다. 결국 한경숙의 시를 읽는 것은 이 거대한 대멸종의 시대에 서로를 붙드는 질긴 반려의 감각을 기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