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세계화 순간부터 제국 소멸의 마지막까지 피어나고 또 사그라지던 시간의 무늬가 전개됩니다. 그 무늬는 카타콤베(지하무덤)에 나타난 초기 그리스도교의 이미지에서부터 비잔티움 교회의 음악과 문학, 건축, 그리고 비잔티움 미학과 신학의 핵심적 증표랄 수 있는 이콘(성상화)까지를 포괄합니다.
서구 라틴적 가치관에서 볼 때, 이콘은 이집트 예술과 같은 원시주의 예술의 하나이자 그리스 고대 예술이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보다 생명력이나 생동감을 결여한 열등한 예술로 간주되어 버리기도 하였으며, 신에 대한 우상이라는 기나 긴 역사적인 신학 논쟁 기간을 거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잔티움 세계와 그의 적자인 러시아 정신문화까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의 하나인 이콘은 단지 성서에 언급된 성스러운 사건에 대한 단순한 회화적 재현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보이지 않는 초월적 세계와 통교할 수 있는 매개적 요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콘에 나타난 화법의 독특함은 단순한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사적 맥락 전체에서 또 다른 사유 체계의 하나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콘 화법의 독특성을 몇 가지로 일별하자면, 인물 형상화의 측면에서 후광과 정면성의 원칙을 유지하고, 공간 구성의 형식에 비례와 기학학적 구조를 적용하였으며, 르네상스적 기법인 일점 원근법과 대비되는 역원근법을 따릅니다. 또한 이콘만의 독특한 색채 상징을 통해 시각적 인상을 종합함으로써, 이콘을 비례, 기하학적 구조, 역원근법을 섬세하게 내장하는 상징적인 의미체로 고양시킵니다. 이때 이콘은 이콘만의 독특한 회화적 조형언어의 미시적 요소들이 유기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총체적인 거시 텍스트가 됩니다. 그리고 비잔티움의 문화사 속에서 단순한 시각적 매개물을 넘어선 ‘영원으로 열린 창문’이란 실천적 기능을 부여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