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산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이제부터 아들에게 인생을 바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아홉 살 에욜프가 물에 빠져 죽는다.
헨리크 입센이 예순여섯에 쓴 이 희곡은 여기서 시작한다. 사건은 1막에서 끝나고, 남은 두 막에는 부부의 대화만 남는다. 그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는 정말 저 아이를 사랑했는가. 지금 흘리는 눈물은 슬픔인가, 아니면 양심의 가책인가.
아이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든 사고가 일어나던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품에 있었다. 그래서 목발을 볼 때마다 자기 자신을 보아야 했고, 그래서 아이를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를 책상 앞에 앉혀 두는 것으로, 어머니는 남편을 독차지하려는 마음으로 그 회피를 견뎌 왔다. 아이가 사라진 뒤에야 두 사람은 자기들이 한 번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안다. 아내는 말한다. 우리가 낯선 남자아이 하나를 두고 이렇게 슬퍼하고 있다니.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자식에게 얹는 부모의 못다 이룬 꿈, 재난 앞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침묵. 1894년의 이 작품이 건드리는 곳은 백삼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노르웨이어 원작의 윌리엄 아처 영역본을 저본으로 새로 옮겼다. 인물 사이의 존댓말과 반말을 관계에 따라 정리했고, 되풀이되며 뜻이 쌓이는 낱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말로 옮겼다. 1890년대 노르웨이의 제도와 관습을 모르면 대사의 뜻이 통하지 않는 자리에는 주석을 달았다. 본문 뒤에는 작품 해설과 오늘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글, 함께 이야기 나눌 질문 열 가지, 입센 연보를 실었다.
본문 중에서
알메르스 (생각에 잠겨 바라보며) 당신 말이 맞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를 한 번도 진짜로 가진 적이 없었던 거야.
리타 그래. 온전한 사랑으로는.
알메르스 그런데도 우리는 이토록 사무치게 슬퍼하고 있어.
리타 (비꼬듯) 그러게,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낯선 남자아이 하나를 두고 이렇게 슬퍼하고 있다니.
알메르스 (터뜨리듯) 그 애를 낯선 아이라고 하지 마!
리타 (서글피 고개를 저으며) 우리는 그 애를 얻은 적이 없어, 알프레드. 나도,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