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된 부자관계를 통해 전쟁의 슬픔을 조망한 60년대 우리 문학의 수작 ‘수난이대’를 비롯하여 ‘나룻배 이야기’, ‘노은사’, ‘그해의 삽화’, ‘검은 자화상’, ‘야호’ 등 인간의 원초적 감정의 미를 추구한 작품들로 우리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가 하근찬. 〈내 마음의 풍금〉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순수하고 서정적이라는 평을 얻은 중단편 ‘여제자’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주인공 간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과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숙해 가는 여주인공 홍연의 모습이 단아한 문체로 서술되고 있다. 육체적인 자극의 개입 없이 모두의 마음속에 잠재워진 순수의 미를 일깨웠다는 격찬을 받은 소설 ‘여제자’를 이영재 감독이 2년간의 집필 작업 끝에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시나리오로 완성했다.
〈내 마음의 풍금〉의 시나리오가 가진 매력은 원작의 낭만적 정서를 기반으로, 섬세하게 짜여진 일상의 묘미들을 절묘하게 살려낸 데에 있다. 장면과 장면의 자연스러운 연결,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의 성격, 그리고 적재적소에 쓰인 간결한 대사들. 일상적인 것을 따뜻하게, 또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포착해낸 시선에서 관객은 어느새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재치 있는 말장난이 아니라 원작의 미덕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 자체가 새로운 문학이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깊이 있는 울림. 〈내 마음의 풍금〉의 시나리오는 우리 영화에서 쉽게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전한다.
거친 폭력이나 농도 짙은 최루물도 아니지만 〈내 마음의 풍금〉은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의 서툰 글씨로 가득 메워진 작고 초라한 일기장, 삐걱거리는 발 페달소리가 정겨운 낡은 풍금, 겨울 난로 위에 층층이 쌓아놓은 양은 도시락, 그리고 이젠 CD에 밀려 생상조차 되지 않는 LP 레코드. 만나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미소를 자아내며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그 소품들에서 관객들은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한 반가움을 느낀다. 낯선 것들을 보여주며 새롭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속에서 새롭다는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두의 기억 속에 잠재워진 미소를 끌어내는 힘. 〈내 마음의 풍금〉을 만나는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