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보려 하지 마십시오. 염불할 이유를 받으십시오.
누구의 띠도 흉보지 않습니다. 기운의 결만 살핍니다.
어떤 사람만 만나면 말이 줄어듭니다. 어떤 자리만 서면 가슴이 먼저 내려앉습니다. 고향 길에 오르지 못한 마음도, 명절에 비운 상 자리도 한때의 기분으로만 지나가지 않습니다. 불자의 삶에서는 그 흔들림을 업연이라 부릅니다.
띠의 천적은 영원한 원수가 아닙니다. 부처님 가피 안에서 아직 녹지 않은 업장이 비치는 거울입니다. 거울을 깨려 하지 않습니다. 광명진언으로 비추면 어둠이 스스로 물러납니다. 그래서 오늘도 염불을 올립니다.
육충 · 육합 · 삼합이란 무엇인가
옛사람들은 열두 띠의 만남을 세 갈래로 살폈습니다. 부딪히는 자리, 서로 기대는 자리, 셋이 모여 큰 원력이 되는 자리입니다. 벌이 아니라 염불이 필요한 자리를 알려 주는 표식입니다.
육충
기운이 세게 맞부딪히는 여섯 쌍입니다. 쥐와 말, 소와 양, 호랑이와 원숭이, 토끼와 닭, 용과 개, 뱀과 돼지입니다. 상대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내 안의 조급함과 자존과 침묵이 상대의 강한 습관에 건드려지기 때문입니다. 이 앞에서는 피함이 아니라 염불이 먼저입니다.
육합
서로 기대어 일이 피어나는 여섯 쌍입니다. 쥐와 소, 호랑이와 돼지, 토끼와 개, 용과 닭, 뱀과 원숭이, 말과 양입니다. 한 사람은 방향을 잡고 한 사람은 마감을 지키면 복이 쌓입니다. 이 인연을 만났다면 감사 염불을 올립니다.
삼합
세 기운이 모여 큰일이 열리는 네 국입니다. 원숭이·쥐·용의 지혜, 호랑이·말·개의 용기, 뱀·닭·소의 결실, 돼지·토끼·양의 자비입니다. 세 마음이 한 원력으로 모이면 혼자서는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립니다.
육충은 벌을 내리는 낙인이 아닙니다. 염불이 필요한 신호입니다. 육합과 삼합은 자만하라는 면허가 아닙니다. 감사 정근을 올리라는 가피의 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