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송자 시인의 시집 『무늬의 일가』는 삶의 여러 자리에 스며 있는 슬픔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그 슬픔을 통해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는다. 늙은 부모의 몸과 떠난 사람의 빈자리, 죽은 나무와 사라진 마을, 작은 생명들이 겪는 고통에는 저마다 다른 빛깔과 무늬가 있다. 시인은 눈과 비, 굽은 몸과 젖은 벽의 감각으로 그 차이를 드러낸다. 「시인의 말」에서 어둠을 “짙은 염료”라고 부른 것도 이러한 태도와 닿아 있다. 어둠을 통과한 삶에는 슬픔이 스며든 빛깔이 생겨나고, 시인은 그 안에서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발견한다.
슬픔의 정서는 자연과 생활의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깊이를 얻는다. 「풍장」에서 죽은 개복숭아나무에게 눈은 흰 수의를 지어 입히고 바람은 문상을 온다. 같은 흙에 뿌리내리고 햇빛과 비를 나눈 나무들은 “한솥밥”을 먹은 사이가 된다. 함께 살아온 존재들이 한 생명의 죽음을 나누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애도의 감각은 「서쪽」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남은 생을 바라보는 눈길로 이어진다. 보름달에서 눈썹달로 얇아지듯 쇠약해진 아버지 곁에 어머니는 개밥바라기별처럼 떠 있다. 같은 하늘에 머물면서도 함께 질 수 없는 두 존재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이의 외로움을 아프게 전한다.
가까운 이의 슬픔을 오래 바라본 눈은 여리고 낮은 생명의 고통에도 민감해진다. 유리창에 부딪힌 산비둘기, 햇볕 속에서 목마른 지렁이, 빈집에서 새끼를 낳은 개는 각자의 몸으로 세계의 가혹함을 겪는다. 시인은 그 몸에 알맞은 삶의 조건을 헤아리며 인간에게 익숙한 판단이 과연 맞는지 돌아본다. 「닭발에 대하여」에서는 음식으로 놓인 발을 “한 생애 가장 쓸모가 많았던 몸의 일부”이자 “생계의 중심”으로 읽는다. 땅을 헤치고 험한 길을 건너온 발의 시간을 생각하자 함부로 불러온 이름도 바꾸고 싶어진다. 작은 생명을 존중하는 감각이 인간의 언어와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이 시집에서 사랑은 상대의 몸과 시간을 헤아리는 데서 깊어진다. 시인은 붙들어주는 손길에도 상대의 마음을 잘못 읽을 위험이 있음을 안다. 겨울 폭포를 바라보며 “저 형벌 같은 균형을/사랑이라 해야 하나”라고 묻는 「완고한 문장」에는 그 신중함이 담겨 있다. 추락을 막는 손과 흐름을 멈추게 하는 힘이 같은 자리에 놓일 때 사랑의 뜻은 쉽게 정해지지 않는다. 시인은 자신의 손길이 상대에게 남긴 흔적을 살피며 사랑의 의미를 거듭 묻는다.
사랑의 구체적인 내용은 생활 속의 작은 동사들로 채워진다. 「숨땀」에서 잠옷에 단추를 달고 매듭을 숨기는 바느질은 오랜 삶의 상처를 다독이는 움직임이 된다. “홀치고 감치고/이 악물고 박음질처럼 달려온 날들”에는 관계를 지탱해 온 수고가 배어 있다. 풀어진 자리에 한 땀을 보태는 손길이 상대의 하루를 지켜준다. 작은 연못이 되어 “당신의/마른 기억을 불리고 있는 중”이라는 「기억을 불리다」 역시 기다림과 지속의 감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메마른 기억이 다시 물기를 머금을 때까지 곁에 머무는 일이 사랑의 한 모습이 된다.
이 모든 손길은 「안부가 되는 밥」의 소박한 안부에 모인다. 어머니와 벗과 이웃이 밥을 먹었는지 묻는 말에는 한 사람의 몸과 생활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더운밥처럼/금방 가슴이 따뜻해”질 때 말은 몸을 데우는 온기를 얻는다. 이렇듯 이 시집 『무늬의 일가』의 성취는 슬픔의 정서를 타자의 고통을 알아보는 감각으로 넓히고, 사랑을 날마다 되풀이하는 돌봄의 행위로 구체화한 데 있다. 생활어의 소박함과 이미지의 깊이가 어우러진 이 시집은 사라지는 존재의 흔적을 오래 간직하며,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작은 관심의 힘을 우리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