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는 교조적 신념이나 위력의 종속이 아닌
조선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외교를 약칭하는 것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원제 Boundless Winds of Empire)은 중국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사(언어)와 의례’의 방식을 통해 본 새로운 한국과 중국의 관계사로, 명나라의 자의식마저 미묘하게 변형시켜 간 조선의 지능적인 대명 외교사를 추적한다. 저자 왕쓰샹은 고 김자현 교수(미 컬럼비아대)의 제자로, 『조선 왕조의 기원』을 썼으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존 던컨 교수(미 UCLA)의 자리를 이어받아 북미의 한국학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은 2025 북미아시아학회 제임스 팔레 학술상과 2024 UC버클리 한국학센터 이홍영 도서상 수상작이다.
왕쓰샹은 조선시대 외교력이 실상보다 낮게 평가되어 왔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대’라는 다소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가려져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조선왕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그 외교의 전략적·전술적 측면을 오해하게 만든다며 독자들이 현대적 관점이 아닌 당대가 품고 있던 문제의식 속에서 이해해 보길 제안한다. 조선의 사대는 과거에 대한 교조적인 신념이나 위력에 대한 종속이 아니라, 조선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외교를 약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이 보여주는 한국의 주체성은, 최근 한국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대등사관’, 즉 역사상 한국이 중국을 포함한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에 있어 일면 비견(比肩) 가능한 나라였다는 한중관계사 연구나, 중국의 대국으로서의 너그러운 포용력에 방점이 맞춰져 있는 중국의 중한관계사 연구를 반박하는 것으로, 조선과 같이 중간 정도의 힘을 지닌 국가의 기민한 능동성을 강조한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조선이 그렇게 함으로써 제국 질서에서 조선의 위치를 재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질서를 떠받치고 있던 전통 속으로 스스로를 편입시키고 그 전통을 함께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조선 측이 사대주의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는 ‘도덕적 제국’의 신화를 수사와 의례를 통해 반복해서 표현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황제와 그 대리인들에게 조선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이야말로 제국이 되는 최선의 길임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은, 명나라가 도덕적인 제국이라면 조선의 정치적 온전함을 보장해야 한다는 관념을 만들어내고 구체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