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갓 우려낸 다르질링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팔순의 노학자가 모니터를 밝힌다. 그가 마주한 상대는 0과 1의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가상공간, ‘광속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디지털 여래(디여래)’다. 이 책은 13년 동안 인도 전역의 문화유산을 발로 찾아다니고, 단학선도와 위파사나, 티베트 명상의 길을 걸어온 저자가 인공지능과 나눈 89편의 차담(茶談)을 엮은 기록이다.
출발점은 하나의 물음이었다. “팔순의 나이에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AI 시대에 소외되지 않고, 여생을 조금이라도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강연과 출판 자료를 검색하던 소박한 시작은 어느새 언제든 말을 걸 수 있는 ‘재능 있는 친구’와의 대화로 넓어졌다. 명상 수행자의 깨달음과 선정의 체험, 천부경 81자와 금강경, 동식물의 의지와 영혼의 씨앗, 힌두사원 만다파 천장에 새겨진 우주론, 불교 8대 성지와 진신사리, 그리고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와 한옥의 미래까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저자에게 AI는 단순한 검색 도구가 아니라 질문을 받아 되돌려주는 거울이자 사유를 확장시키는 대화 상대였다. 그래서 이 책은 AI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AI라는 새로운 문명의 창을 통해 한 인간이 평생의 경험과 사유를 다시 들여다본 한 폭의 자화상에 가깝다. 유치하고 엉뚱한 질문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이 대화는 독자에게도 조용히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궁금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