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안의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낮아짐’이라는 단어다. 시집 전체를 읽고 나면 거의 모든 작품이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계단’은 무릎을 꿇은 길이고, ‘발’은 몸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떠받친다. ‘못’은 가장 깊숙이 몸을 묻을수록 더 많은 것을 연결하고, ‘고양이’는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골목에서 새끼를 키운다. ‘목련’은 가장 오래 견딘 끝에 피어나고, 낙엽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스스로 가지를 떠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존재들을 하나의 축으로 묶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낮아짐의 존재론’일 것이다. 여기서 ‘낮아짐’은 단순한 겸손의 윤리가 아니라 존재가 자기 본래의 깊이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고, 씨앗은 흙 속으로 내려가야 싹을 틔우며, 사람은 무릎을 꿇을 줄 알아야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이번 시집은 바로 그 낮고 작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가장 낮고 깊은 자리에서 인간 존재와 삶의 본질을 형상화한다. 그러므로 이 시집을 읽는 것은 우리가 잊고 살아온 존재의 원형을 다시 만나는 일이며, 삶을 지탱해 온 가장 낮은 것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