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끝내 빼앗기지 않는 자리가 있다.
1세기 로마, 네로 황제의 비서 집에 다리를 저는 소년 노예가 있었다. 몸도 시간도 이름조차 주인의 것이었던 그는 훗날 자유를 얻어 철학을 가르쳤고, 황제의 추방령으로 로마에서 쫓겨난 뒤 그리스의 바닷가 도시 니코폴리스에 작은 학교를 열었다. 그가 평생 가르친 것은 단 하나였다. 세상의 일을 두 칸으로 나누는 법. 내 손에 달린 것과 달리지 않은 것.
그의 말은 제자 아리아노스의 받아쓰기로 살아남았고, 한 세대 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머리맡에 놓였다. 노예의 말이 황제를 붙잡은 것이다.
이 책은 『엥케이리디온』과 『담화록』에서 고른 문장 아흔 개를 그리스어 원전과 고전 영어 번역을 대조해 새로 옮기고, 꼭지마다 오늘 우리 삶의 장면 하나를 올려놓았다. 단톡방의 침묵에 밤새 뒤척이는 밤, 상사의 한숨에 무너지는 아침, 명절 식탁의 말 한마디, 형제와 틀어진 오 년, 아픈 부모님 곁을 지키는 일. 2천 년 전의 노예는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정확하게 짚는다. 그 정확함이 이상하게 사람을 덥힌다.
-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 / 남의 말과 시선 / 분노와 불안 / 가까운 관계 / 죽음과 하루, 다섯 부 아흔 꼭지
- 꼭지마다 원문 한 대목과 출처(『엥케이리디온』 몇 장, 『담화록』 몇 권 몇 장)
- 처음 읽는 사람을 위한 '다섯 개의 열쇠', 에픽테토스 연보, 원전과 번역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