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할 일이 없이, 관여할 일이 없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따는 주문에서 깨어나
있는 그대로 진실을 보고, 있는 그대로에 깨어 있는 평안함―.
“행복은 순수한 있음의 기쁨이요,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에고의 성이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나 없음’의 경이를 노래해 온 저자의 여섯 번째 책으로, 개체살이가 쌓게 마련인 단견과 편견, 고정관념을 넘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내가 있다’는 확고한 믿음 아래, 나를 잘 가꾸고 다듬어 완전한 나로 승화시키는 것이 참다운 삶이라 배우며 살아왔다. 심지어 마음공부와 수행마저도 에고를 벗어나 ‘특별하고 거룩한 나’를 얻거나 어떤 경지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나를 이겨내고 아름답게 가꾸려는 마음은 나를 더욱 살아나게 하는 독으로 작용한다.” 지켜야 할 ‘나’도, 새로이 찾아야 할 또 다른 ‘나’도, 본래 실체가 없는 생각의 산물(허상)임을 보지 못하는 한, 어떠한 노력과 추구도 생각의 감옥을 더욱 공고히 쌓아 올리는 굴레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연기(緣起)와 무아(無我), 공(空), 노장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소요유(逍遙遊), 그리스도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가르침, 그리고 다석 유영모의 ‘위이무(位而無)’와 ‘오~늘’ 사상을 막힘없이 종횡무진하며 하나의 진실을 가리킨다. “있다고 할 만한 개별적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조건 지어져 나타난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늦가을 감나무 가지에 홀로 남은 홍시가 자기 홀로 열매 맺어 익어 온 것이 아니듯, 온 우주의 촘촘한 인연화합으로 매 순간 삶이 저절로 살아지고 있음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천하를 다 짊어진 듯 무겁기만 하던 ‘나’라는 짐이 내려놓아진다. 거짓을 거짓으로 보아 더 이상 해야 할 일도, 구해야 할 것도 본래 없음을 알게 될 때 찾아오는 적멸의 평안함?. 저자는 그것이 바로 ‘받아들임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수행은 ‘마음먹기’가 아닌 비워내는 일이라는 ‘마음 닦기’에 관한 이야기, 생로병사의 두려움을 넘어 우주의 완벽한 운행에 올라타는 ‘오늘살이’에 관한 그의 글들은, 더 이상 생각의 노예로 속아 살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한 서늘하고도 명쾌한 각성의 죽비가 되어 준다. “내가 어찌할 일이 없이,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노니는” 무위(無爲)와 자재(自在)의 길, 그 충만한 행복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