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버스 총서’ 다섯 번째 책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판이론의 미장아빔』은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의 한국 수용 과정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이시윤 저자의 책이다. 저자는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판이론가 벤야민과 아도르노를 마주 세운 두 개의 거울로 삼아, 한쪽이 다른 쪽을 끝없이 되비추는 ‘미장아빔(mise en abyme, 거울 두 개를 마주 보게 하여 그 안에 맺히는 무한의 상을 만들어 내는 놀이를 뜻함)’의 구도 속에서 이들의 사유가 도달하는 지점을 추적한다.
저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둘러싼 기존 논의는 소재를 주제로 혼동하고, 키워드를 파편적으로 나열하는 데 머물러 왔음을 지적하며, 생태주의·평화주의·여성주의라는 미야자키 작품의 세 가지 핵심 주제를 비판이론을 통해 하나의 체계로 재구성한다. 그 열쇠는 ‘문제의 과대설정과 해결책의 과소설정’이라는 서사구조의 비대칭성이다. 저자는 비판이론의 도구적이성이 낳는 ‘비상사태’와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미메시스’라는 개념쌍으로 이 비대칭성을 분석한다.
이 책은 영화 해석이나 비평이 아닌 지식사회학적 작업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열 편의 영화를 주제별로 짝지어 읽으며, 작품이 세계에서 태어나 다시 세계에 개입하고, 그 성공과 실패가 작품으로 되돌아오는 궤적을 따른다. 거대한 절망 앞에서 끝내 미약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감독과 사상가들의 고투가 이 거울놀이의 끝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