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녹색 코드가 비처럼 쏟아지던 그날 이후 『매트릭스』는 영화사에서 가장 많이 해석된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빨간 약과 파란 약, 흰 토끼, 숟가락을 휘는 아이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보고 있는 세계는 진짜인가?
『숟가락은 없다』는 이 영화에 숨겨진 상징과 은유를 여러 갈래의 시선으로 풀어낸 해설서다. 플라톤의 동굴과 데카르트의 악령,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같은 철학에서 출발해 기독교의 구원자 서사와 영지주의, 불교의 공(空)과 윤회를 지난다. 그리스 신화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별자리와 타로, 연금술을 거쳐 융과 라캉의 정신분석,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 시뮬레이션 가설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이른다.
특히 이 책은 시리즈가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기계와의 휴전과 공존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하늘을 먼저 불태운 것은 누구였는지, 네오는 왜 스미스를 이기는 대신 받아들였는지, 그 평화는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묻는다.
정답을 하나로 정해 주는 책이 아니다. 휘는 것은 숟가락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말처럼, 같은 영화를 전혀 다르게 보게 만드는 책이다. 토끼굴이 얼마나 깊은지 함께 내려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