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은 가장 센 자가 남는다는 말이 아니다. 가장 잘 맞는 자가 남는다는 말이다.”
회사에서 구조조정 소문이 돌 때,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신한다는 기사가 쏟아질 때 어김없이 따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적자생존, 그리고 도태입니다. 살아남으려면 더 강해지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다윈이 아니라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쓴 ‘적자’는 가장 센 자가 아니라 그 자리의 조건에 가장 잘 맞는 자를 뜻했습니다.
『당신은 도태된 것이 아니라 아직 맞는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는 ‘시대철학 시리즈’의 일곱 번째 권으로, 스펜서의 문장과 삶을 함께 따라가며 ‘도태’라는 말을 다시 읽는 책입니다. 두꺼운 털이 추운 산에서는 목숨을 지키지만 더운 들판에서는 짐이 되듯, 사람도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평가표의 ‘역량 부족’이라는 칸은 사람에게 붙을 뿐, 그 사람이 어떤 팀에서 어떤 일을 맡았는지는 남기지 않습니다. 책은 이 어긋남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스펜서 자신이 오랫동안 어디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외우는 공부를 견디지 못해 학교에서 꾸중을 들었고, 열세 살에는 숙부의 집에서 사흘을 걸어 도망쳤습니다. 철도 기사 자리를 스스로 걷어찼고 발명품은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 첫 소책자는 백 부쯤 팔렸고, 출판사가 첫해에 건넨 돈은 14실링 3펜스였습니다. 스물여덟이 될 때까지 그는 스스로 ‘좌초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사람이 훗날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책은 그를 깨끗이 씻어 주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자비가 내린 판결’이라 부른 문장, 우월한 자가 남는다는 이야기가 차별의 근거로 쓰인 장면도 그대로 읽습니다. 동시에 자기 몸의 속도에 일을 맞추고, 일을 나눠 맡을 구조를 만들고, 머물 환경을 고르고, 직함 대신 자기 일을 고른 그의 방식에서 오늘의 우리가 가져갈 것을 찾아냅니다.
이 책은 성공담이 아닙니다. 스펜서의 삶에는 끝까지 맞지 않은 것도 많았고, 말년에는 외로웠으며 그가 그린 미래는 빗나갔습니다. 다만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숨 막히게 맞지 않는 사람에게, 이 책은 그 어긋남부터 다시 읽어 보자고 권합니다. 약해서 밀려나는 중인지, 아직 맞는 자리에 닿지 못했을 뿐인지는 한 번의 평가로 가려지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