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요일』은 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라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시집의 표제인 ‘나무요일’은 달력에 실제로 존재하는 요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이 새롭게 발견해 낸 삶의 시간이다. 인간이 만든 시간표에서 벗어나 나무의 속도로 살아보는 시간,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을 이해하고 그 간격 속에 깃든 침묵을 읽어 내는 시간이다.
시인은 “한 편의 시는 한 그루 나무”라고 말한다. 시집을 엮으며 “숲으로 간다”고 한 시인의 말은 이 시집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나무가 되어 서고, 그 나무들이 서로 기대어 하나의 숲을 이루는 것이 『나무요일』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배롱나무 편지」와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여자」에서는 자연과 일상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진다. 특히 후자는 도서관을 숲처럼 읽고, 책을 나무처럼 바라보는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생활 속으로 들어온 작품이다. 시인은 책 속의 활자를 씨앗처럼 받아들이고,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나뭇잎을 펼치는 일처럼 느낀다. 문학은 결국 살아 있는 나무이며, 사람 역시 한 권의 ‘사람책’이 된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시집 곳곳에서 ‘거리’의 문제로 나타난다. 나무와 나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어머니와 딸 사이, 삶과 죽음 사이, 말과 말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다. 유회숙은 그 간격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간격을 존중한다. 그 사이에서 이해가 태어나고, 사랑이 깊어지며, 시가 발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무요일』은 공존의 시집이다. 나무가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숲을 이루듯 사람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야 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닌”이라는 시적 명제는 이 시집의 윤리를 함축한다. 어쩌면 이 시집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오래 나무를 바라보았는가, 얼마나 오래 사람을 바라보았는가, 한 번이라도 자기 삶을 나무처럼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