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시인의 시를 하나의 문장으로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의 시에는 가족과 사랑이 있고 기억과 죽음이 있으며 종교와 철학이 있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풍자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소재의 배후에는 그것들을 하나의 시적 감각으로 묶어내는 일관된 태도가 있다. 그것은 삶을 쉽게 해석하거나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려는 태도다. 이때 시인에게 바라봄은 관찰에 머무르지 않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자신이 믿어온 가치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다시 바라보는 인식의 행위다.
이종기 시인의 시에서 삶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닌다. 사랑은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상처와 책임이 함께 있고 기억은 소중하지만, 망각과 왜곡을 동반한다. 인간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종교는 구원의 언어를 말하면서도 인간의 욕망에 의해 쉽게 제도화된다. 사회를 향한 풍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폭로하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풍자하는 자신 역시 그 세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자각이 남는다. 이처럼 그의 시는 어느 하나의 가치에 안착하기보다 서로 충돌하는 양면을 동시에 견디는 방식으로 구축된다.
- 이지선(시인)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