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미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류 기득권층과 히스패닉 계의 갈등일 것이다. “우리도 미국”이라는 히스패닉 계의 주장과, 이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미국 사회에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반이민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기득권층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미국 내 기득권들로 하여금 이들을 “위험” 요소로 인식하게 한 것일까.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기득권이 집단적 “편집증”을 앓고 있다는 것 또한 가능한 설명 중 하나일 것이다.
편집증은 고도로 체계화된 망상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의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위험한” 생각들이 투사 과정을 거쳐 다양한 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무의식의 영역에서 자신의 동성애적 충동을 감지한다면, 남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그 충동들을 의식의 영역에서 감지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버린다. 저절로 동성애적 충동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에게 동성애적 충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안전한” 생각을 선택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신의 동성애적 충동에 대한 투사는 “나에게 동성애를 강요하는” 모든 동성애자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개인의 심리적 기제들이 정치, 사회의 영역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복지 정책으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조차 복지 정책을 반대하는 것 역시, 자신의 처지를 기득권에 투사함으로써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인하는 수단일 수 있으며, 히스패닉 계가 사회에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히스패닉 계에게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미국 기득권층의 불안감이 투사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투사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복지 정책을 반대하고 어떤 죄책감도 없이 모든 갈등의 원인을 히스패닉 계에게로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편집증의 메커니즘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다양한 상담 사례를 통해 편집증이 나타나는 양상과 편집증이 개인과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것을 이해함으로써 가깝게는 편집증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고, 크게는 좀더 큰 규모의 사회정치적 과정과 인간사 전반에까지 기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