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 없다.”
밤에 본 일을 전한 아들 앞에서 부모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기다리던 딸이 집안을 해칠 리 없고, 한집에 사는 누이가 여우일 리 없었다. 그러나 부모의 확신 속에는 아들이 목격한 일을 차근차근 확인할 자리가 없었다.
『그럴 리 없다는 말 앞에서』는 「여우누이」의 무서운 밤보다, 그 밤을 이야기한 뒤의 시간을 오래 읽는다. 위험을 보았으나 믿음을 얻지 못한 오라비, 사랑하는 딸에 대한 기대를 놓기 어려웠던 부모, 너무 늦게야 확인한 진실을 따라가며 관계와 자기 신뢰를 함께 살핀다.
민요달은 옛이야기 곁에 오늘의 경험을 놓았다. 분명 불편했는데 예민하다는 말을 듣고 접었던 마음, 좋은 기억 때문에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의심, 내 판단부터 탓하며 넘긴 일들이 그 곁에 있다. 배신 외상 이론을 바탕으로, 의지하는 관계 안에서 해로운 경험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도 짚었다.
자신의 느낌을 존중하면서 사실을 확인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하며, 믿음을 다시 쌓아 갈 상대와 속도를 스스로 고르는 일. 오래된 설화의 마지막 페이지 뒤에는 독자가 써 갈 그 시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