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소리로는 알지만, 앞뒤 문장을 따라 뜻을 설명하려면 쉽게 멈춘다. 반야심경의 유명한 구절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자주 문맥에서 떨어져 나간다.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일까. 눈과 귀가 없다는 대목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부정한다는 뜻일까. 이 질문을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고 경전의 순서로 다시 읽는 안내서가 여기 있다.
『반야심경, 익숙한 소리를 이해하는 시간』은 독송의 친숙함과 문장 이해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반야바라밀다 문헌의 전승과 짧고 긴 형태의 관계를 살핀 뒤, 관자재의 관찰, 오온, 색과 공의 관계, 불생불멸, 감각과 인식의 부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널리 알려진 문장을 떼어 놓고 단정하지 않고 앞 구절의 질문이 다음 구절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확인한다.
무명과 노사, 고집멸도, 무지와 무소득, 걸림 없는 마음과 진언의 자리까지 경전의 낯선 표현을 차례로 풀어 본다. 번역어와 독송문의 간격, 문헌의 성립을 둘러싼 학술적 논의와 신앙적 수용을 구별하려는 태도도 유지한다. 하나의 해석을 강요하기보다 어떤 문맥에서 무엇을 부정하는지를 독자가 직접 살펴보도록 돕는다.
처음 반야심경을 읽는 사람에게는 길잡이가 되고, 오래 외워 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음절 사이에 질문을 다시 놓는 독서의 기회가 된다. 독송의 경험을 바꿀 필요는 없다. 다만 소리가 가리키는 개념의 연결을 한 번 따라가면, 짧은 경전의 문장들이 전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