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시와문화》 신인상으로 등단한 배정빈 시인의 시집이다. ‘시와문화 작가상’을 수상한 배정빈은 무등산을 시적 구심점으로 삼아 화순 탄광 노조 분규와 5·18광주민중항쟁 등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민중 생존권 투쟁을 시의 언어로 되살려 왔다. 그의 시에서 무등산은 단순한 자연 경관이나 고향의 표상을 넘어, 억압과 불의에 맞서 살아온 민중의 역사를 품고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열망을 북돋우는 정신적 지주로 기능한다.
이처럼 시인은 지역의 자연과 역사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그 안에 깃든 고통과 저항의 기억을 보편적인 삶의 문제로 확장한다. 배정빈 시세계의 핵심은 민중의 고통을 증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탐색한다는 데 있다. 그는 노동자의 땀과 상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서정적인 언어와 명징한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노동과 건축물을 떠받치는 사물들의 관계를 통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들의 노동과 헌신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는 노동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또한 자연의 질서와 사물의 이치를 인간의 삶에 겹쳐 놓음으로써 경쟁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지향한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과 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희구가 구체적인 삶의 장면 속에서 어우러지는 것이 그의 시적 특징이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작 「산목련 피는 곳으로 오른다」를 비롯해 「무등산 연가」, 「못」 등 66편의 시를 수록했다. 이 시편들은 무등산의 자연과 민중의 역사를 아우르면서 노동의 현장에서 발견한 삶의 원리와 인간적 가치를 함께 조명한다. 무거운 역사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관념이나 구호에 기대지 않고, 서정과 구체적인 이미지로 독자의 감각과 정서에 다가가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민중의 고통을 개인의 삶과 분리된 과거의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고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한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을 떠받치는 존재들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결국 그의 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묻고, 그 답을 노동의 존엄과 상호 연대의 실천에서 찾는다. 시인은 광주일고와 동국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보성건설 기획실장과 미래테크 대표를 역임했다. 전자책 시집 『고마리꽃 연가』와 장편소설 『썬더맨』을 펴냈으며, 한국작가회의 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시와문화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