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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초록에 물소의 발목이 자라고
글쓴이
정동수 저
출판사
삶창(삶이보이는창)
출판일
2026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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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정동수

2016년 『시와문화』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새를 만났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웃었다』가 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침묵은 소생의 태생지

정동수 시인의 『짓밟힌 초록에 물소의 발목이 자라나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과밭에 거주하는 정신 혹은 침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집 전체를 읽으면 독자들은 풍요로운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겠으나 정작 그 안에 “씨앗” 같은 고요도 동시에 웅크리고 있음을 알 것이다. 물론 “씨앗”이란 시어가 나오는 작품은 「사과밭 묘지」 「마음의 관절」 「말[言]의 무덤」 세 편뿐이다. 그런데 “씨앗”과 꼭 같은 의미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무리가 따르기는 하지만 어딘가 동일한 정동(情動)의 자장 안에 있는 것만 같은 “침묵”이라는 시어가 등장하는 작품은 「사과밭 묘지」 「억새를 캐내며」 「스킨답서스를 그림자에 심으렴」 「과거는 늘 오늘 곁에 산다」 네 편이며 이 중 「사과밭 묘지」가 양쪽 계열에 동시에 속한다. 그리고 「사과밭 묘지」에는 “침묵”이 7회나 등장한다. 또 “어둠”이라는 시어가 등장하는 작품은 이들 작품보다 많은 8편인데 흥미롭게 「사과밭 묘지」에 “어둠”이 2회 등장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사과밭 묘지」에 집중된다.

그대여, 내게도 해묵은 침묵의 저수지가 찰랑거리고 있어
그 수면은 어둠뿐이라네
노 저어 올 이 아무도 없는 사과의 씨앗같이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다네
_「사과밭 묘지」 부분

「사과밭 묘지」는 시인 정동수의 페르소나가 고요히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에 “씨앗”과 “침묵”과 “어둠”이 집중돼 있으면서 그것이 조용히 목청을 내고 있음은 확실해보인다. 5연에서 “침묵은 나의 태생지”라고 했지만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인용한 위의 2연이다. 이 연에서 자신에게도 “침묵의 저수지”가 있지만 그 “수면은 어둠뿐”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사과의 씨앗같이/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는 무엇을 말하지만 그 무엇은 일단 “비밀”로 봉인된다. “씨앗”이 등장하는 「마음의 관절」 「말[言]의 무덤」에서도 “씨앗”의 정체는 아주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동수 시인은 그 “씨앗”이 무엇인지 이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단 「마음의 관절」에서는 “물 고이는 소리, 몸 뒤트는 소리”가, 「말[言]의 무덤」에서는 “말의 무덤”에서 “말의 씨앗을 물고” 날아오르는 “박새 한 마리”가 나타난다. 아무래도 “씨앗”은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발견한 소생(蘇生)의 상징이자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시적 화자는 “빛에서 그림자로 돌아온” 존재이나 그 그림자를 버리지 않고 “내 동굴 속에서/ 그림자 하나 다듬고 있는” “그림자 세공사”로 제시된다. 그리고 이 “그림자 세공사”는 시집 전체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시인의 자기규정이기도 하다. 사실 이 소생의 이미지는 여러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데 정작 “빛에서 그림자로” 돌아와서 “그림자 세공사”(「그림자 세공사」)가 된 서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그 여정을 단지 “침묵”, “어둠”, “씨앗”으로 비유함으로써 시에 난해성을 부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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