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했지만 인생은 퇴직하지 않았다
퇴직하기 전에는 직장을 그만두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서둘러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밀려드는 업무와 복잡한 인간관계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여행도 하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여유롭게 차 한잔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직장을 떠나고 보니 자유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허전함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었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일정표도 사라졌다. 매일 만나던 사람들의 연락은 점점 줄어들었다. 명함에서 직함이 사라지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라고 생각했다. 직장과 직함이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울타리였다. 하지만 퇴직과 함께 그 울타리 밖으로 나오자 혼자 힘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한다. 60세를 전후해 퇴직한다고 해도 앞으로 30년, 어쩌면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새로운 인생이 될 수 있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막막하고 외로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퇴직 후의 삶에는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곳, 나를 기다리는 사람, 내가 해야 할 일도 필요했다. 건강과 인간관계도 중요했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용기도 필요했다.
나 역시 준비된 퇴직자는 아니었다. 현직에 있을 때는 맡은 일을 처리하느라 퇴직 후의 삶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퇴직 후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쓸 만한 자격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공부는 쉽지 않았다.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았고,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기술은 낯설었다. 그러나 하나씩 배우고 도전하면서 다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며 강사가 되었고, 경험과 생각을 글로 기록하며 작가의 길에도 들어섰다.
돌이켜보면 퇴직은 끝이 아니었다. 익숙한 길에서 내려와 새로운 길을 찾는 출발점이었다. 직장에서는 퇴직했지만 내 인생까지 퇴직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에는 준비 없이 퇴직을 맞은 사람들의 불안과 애환, 다시 일어서기 위한 배움과 도전을 담고자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 정답은 아니지만,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퇴직은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다.
조금 낯설고 서툰, 두 번째 문장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