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은 아무런 말도 없이 지나간 얼굴들을 받아 적는다”
『물빛으로 읽는 너의 이름』 김광선 시인의 시집은 지나온 삶에 남아 있는 사람과 풍경을 물과 빛의 언어로 되짚는다. 첫사랑의 설렘과 이별의 여운, 어머니의 손길과 고향의 기억, 함께 견뎌온 세월과 떠난 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네 부에 걸쳐 펼쳐진다.
시집에서 물은 기억이 되살아나는 자리이다. 호수와 강물, 빗방울과 파도는 마음 깊이 가라앉아 있던 얼굴들을 불러낸다. 「빛이 머문 자리」에서 수면은 “지나간 얼굴들을 받아 적는다.” 「파도는 아직 그 자리에」에서는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물비늘처럼 반짝인다. 흘러가는 물과 오래 남는 기억이 만나는 자리에서, 시인은 곁에 없는 사람의 온기를 다시 느낀다.
그리움은 소박한 생활의 풍경 속에서도 피어난다. 「메밀전병」과 「그때 그 시절」에는 가족이 둘러앉았던 밥상의 따뜻함이 배어 있고, 「겨울을 말리는 빨래」에는 가난과 추위를 견뎌낸 유년의 시간이 걸려 있다. 장독대와 낮은 처마, 들꽃과 오래된 나무는 지나간 날의 이야기를 품은 채 오늘의 마음을 두드린다. 시인은 그 풍경을 통해 자신을 길러낸 사랑과 쉽게 잊히지 않는 삶의 흔적을 돌아본다.
이 시집의 시선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생의 능선」은 느려도 멈추지 않는 걸음에서 세월을 견딘 힘을 발견하고, 「너무 늦은 건 없습니다」는 늦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삶을 응원한다. 상실의 슬픔과 살아갈 날에 대한 기대가 나란히 놓이면서, 그리움은 오늘을 지탱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물빛으로 읽는 너의 이름』의 ‘너’는 사랑했던 사람이며, 고향의 풍경이고, 지나온 시간 속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이름들을 서둘러 잊거나 지우지 않고 한 편씩 다시 불러본다. 누군가의 이름을 마음속에 오래 간직해온 독자라면, 이 시집의 잔잔한 물결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