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식이 언제 일어날지를 계산하는 일과 월식이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같은 지식이 아니다. 바빌로니아는 앞의 것을 600년 동안 정밀하게 기록했고, 그리스는 뒤의 것을 물었다. 『자연과학의 이해』는 예측을 원인의 설명과 논증에 묶은 이 물음이 어떻게 학문이 되었고, 번역과 대학을 건너 과학혁명에 이르렀으며,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지나 인공지능의 시대에 다시 우리 앞에 서게 되었는지를 따라간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에서 오래 맡아 온 교양 강의 「자연과학의 이해」를 위해 새로 쓴 교재다. 자연과학을 이해하고 싶은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도서로도 읽힐 수 있다. 제1부는 과학의 뿌리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찾는다. 플라톤은 감각 너머의 질서를 수학과 이성으로 탐구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관찰하고 원인을 설명하는 여러 학문을 하나의 체계로 조직했다. 밀레토스에서 시작된 물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 이르는 과정은 우연한 착상의 연속이 아니라 앞선 난제를 하나씩 풀어 가는 길로 그려진다. 알렉산드리아의 수학과 관측이 그 뒤를 잇는다. 제2부는 이 유산이 로마와 중세 서방, 바그다드와 코르도바를 거쳐 유럽의 대학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따라간다. 신앙 아래에서도 이성은 보편자 논쟁과 유명론을 거치며 제 자리를 얻었고, 그 발판 위에서 하늘이 움직이고 땅이 움직였다.
제3부는 뉴턴의 『프린키피아』에서 출발해 기계론적 우주와 계몽, 그 성공을 철학적으로 정초하려 한 칸트를 지나, 열역학과 전자기학, 화학과 지질학과 생명과학이 저마다의 증거와 방법으로 성립한 과정을 살핀다. 제4부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기본입자와 우주론을 다루며, 양자역학이 띠 이론과 트랜지스터, 레이저와 전자현미경, 원자 수준으로 새기는 반도체 기술로 오늘의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한 장에 걸쳐 보여 준다. 제5부는 추론이 곧 계산이라는 오래된 발상에서 딥러닝과 말하는 기계에 이르는 인공지능을 따라가고, 정확한 예측이 곧 이해인가라는 물음 앞에 다시 선다.
과학철학은 따로 떼어 다루지 않는다. 귀납의 문제는 뉴턴과 흄과 칸트 곁에서, 반증 가능성은 일식 관측 곁에서, 과학적 실재론은 양자역학의 측정 문제 곁에서, 패러다임은 20세기 물리학의 변화를 돌아보는 자리에서 만난다. 입자물리학자인 저자는 극적인 서사보다 근거의 범위를 따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이 어떤 조건에서 오늘의 역학과 닮은 결과를 내는지, 뉴턴 역학이 상대성 이론 안에서 어디까지 유효한지, 혼돈과 양자의 불확정성이 왜 같은 불확실성이 아닌지를 구별해 적는다.
수식은 꼭 필요한 것만 그 뜻을 풀어 실었으므로 고등학교 수학으로 충분히 따라올 수 있다. 원리를 보여 주는 그림은 본문에 맞추어 새로 그렸고 역사의 장면은 회화·판화·사진으로, 개념과 원리는 도해로 보여 주어 모두 81점의 도판을 갖추었다. 인명과 연도는 큰 전환점만 본문에 남기고, 줄인 인물과 연대, 인용의 출전과 개념의 보충 설명은 80여 개의 미주로 옮겼다. 각 장 끝의 「생각해 볼 문제」는 개념의 확인에서 토론으로 이어지며, 참고 문헌은 국내에서 출간된 책으로만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