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광안리 근처 카페에서 만난 한 셀러가 노트북을 돌려 보여줬습니다. 화장품 상세페이지였는데, 첫 줄부터 성분표가 빼곡했습니다. "이거 카피라이터한테 80만 원 주고 받은 거예요. " 글은 매끄러웠습니다. 오타도 없고 문장도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페이지의 전환율은 0.7%였습니다. 들어온 사람 1,000명 중 일곱 명만 결제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 페이지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첫 화면에 깔린 성분표를 통째로 아래로 내리고, 맨 위에 한 줄을 올렸을 뿐입니다. 2주 뒤 전환율은 1.4%가 됐습니다. 글을 더 잘 써서가 아닙니다. 읽는 사람이 화면을 켠 순간 뭘 먼저 봐야 하는지, 그 순서를 바꿨을 뿐입니다. 이 일을 14년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본 상세페이지 대부분이 같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글이 못나서가 아니라, 글이 놓이는 자리가 틀려서 안 팔리는 겁니다. 사람은 상세페이지를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읽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휙휙 내리다가, 자기와 상관없다 싶으면 3초 안에 뒤로가기를 누릅니다. 동래에서 주방용품을 파는 한 사장님은 이 3초를"면접"이라고 부르더군요. 페이지가 면접에서 떨어지면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끝입니다. 그래서 요즘 많은 분이 AI를 붙듭니다. 챗GPT한테"상세페이지 써줘"라고 던지면 그럴듯한 글이 나옵니다. 문장은 깔끔하고, 단락도 정돈돼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올려 보면 매출은 그대로입니다. 왜일까요. 근데 AI가 못 써서 그런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