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하고 짜릿한 자유로움이
손가락 끝부터 척추를 따라 번졌다.
방종한 사고가 반가웠다.”
고통스럽고도 달콤한 불면에 빠져
침묵과 어둠이 사라진 도시의 밤을 배회하는
미치광이 나르시시스트의 위험한 산책
최재원 장편소설 『강남 스토리』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21년 첫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로 제4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재원의 첫 장편소설이다. 첫 시집에 이어 『백합의 지옥』 『단디 봐라』에 이르기까지 최재원은 방대한 이론과 형이상학을 넘나드는 지적인 언어, 성역도 금기도 없는 속된 말들을 한데 몰아넣어 우글거리고 충돌하는 낯선 에너지로 독보적인 개성을 보여 준 시인이다. 첫 장편소설 『강남 스토리』에서는 그간 시를 통해 선보인 지적이고 개성적인 사유와 폭발적인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리드미컬하고 유머러스한 매력까지 유감없이 발휘한다.
『강남 스토리』는 어느 여름밤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추적하며 시작된다. 피해자와 용의자가 동시에 사망한 이 의문의 살인 사건 끝에, 문제적 인간 ‘한강철’이 등장한다. 한강철은 불면증 환자다. 그에게 불면증은 저주이자 축복이다. 잠시 잠에 들었다 눈을 뜬 순간 시계를 확인하고 부리나케 나서는 산책이 그의 하루에 가장 중요한 루틴이기 때문이다. 붐비지 않는 데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꾸미지 않은 민낯의 표정을 하고 있는 새벽의 강남 거리는 그에게 최고의 오락거리다. 그는 시선에 걸려드는 사람과 사물을 하나하나 낱낱이 뜯어보고 그 본질을 제멋대로 판단하며 떠오르는 사념을 즐긴다. 우스꽝스럽게 여기거나 혐오하고,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심판하거나 저주하고 때론 자비롭게 용서를 베푼다.
한갓진 표정 아래 광기를 감춘 한강철의 산책은 한 이질적인 존재의 등장으로 뒤바뀐다. ‘그’는 한강철의 어떤 사유나 상상으로도, 즉 어떤 의식적 경로로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미지의 인물이다. ‘그’의 등장과 함께 한강철의 산책과 온 의식은 그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오직 그를 위해 눈을 뜨고, 그만을 생각하며, 그를 향해 걷는다. 그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하면서도 그가 보내는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파멸이 자명한 이 집착의 끝에 한강철의 의식은 “낙하와 비행. 파도와 절벽.” 같은 무한한 양극단으로 분열된다. 아름답고도 허무한, 지리멸렬하고도 한없이 흥미로운 새로운 ‘자아’의 탄생이자 종말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