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연평도는 내게 하나의 섬이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서해로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섬, 꽃게와 조기로 유명했던 섬, 북한과 가까워 안보 관광지로 알려진 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연평도를 다녀온 뒤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연평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있었고, 조기 파시로 번성했던 시간이 있었으며, 전쟁과 분단의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군인과 주민이 함께 살아가며 평화를 지켜내고 있는 현재가 있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고려 고속페리에 올라 약 두 시간 동안 서해를 달렸다. 먼발치 오른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장봉도를 지난 후, 배가 소연평도를 향해 나아가자, 바다는 끝없이 넓어졌다.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우리가 평소에 익숙하게 생각했던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소연평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착장 부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얼굴 바위였다. 사람의 옆얼굴을 닮았다는 바위는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품처럼 바다 위에 서 있었다.
잠시 후
배는 다시 움직였고, 마침내 대연평도 당섬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부터 연평도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연평도의 이야기는 선착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가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에서 흘린 눈물은 어느 한 시대의 눈물이 아니었다.
태풍으로 가족과 삶을 잃은 사람들의 눈물이었고, 조기잡이로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눈물이었으며, 전쟁과 포격으로 가족과 동료를 잃은 사람들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눈물의 섬에서 만난 바다는 너무나 평온했다.
푸른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잔했고, 갈매기는 선착장 주변을 날아다녔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평화란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이번 2박 3일의 연평도 여행은 관광이 아니라 하나의 공부가 되었다.
나는 섬을 걸으며 과거를 만났고, 바다를 바라보며 현재를 생각했으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미래의 평화를 생각했다.
서현제에서
송면규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