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훌쩍 넘기며 새삼 과거를 돌아보니, 내 인생은 영화관에서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벌써 영화관에 갔었다고 한다. 거기서 어머니와 함께 〈닥터 지바고〉를 보았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바고를 쥐락펴락하는 매력 넘치는 라라와 나와는 공통점이 조금도 없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할 것이다. 중학교 때 나의 유일한 기쁨은 영화 단체 관람이었는데, 주로 서면의 동보극장과 대한극장(개관 당시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이었다고 한다)에서 영화를 보았다. 고등학교 때 소풍을 갔던 날, 장기자랑 시간이 늘어졌기에 〈위트니스〉의 상영시간을 놓칠세라 친구들과 필사적으로 뛰어갔던 곳은 범일동의 삼성극장(〈친구〉에서 애들이 패싸움하던 극장) 이었다. 몇십 년 만에 재개봉을 하여 이번에 놓치면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재수생이라 거짓말하고 재개봉관이었던 온천극장에서 고3 때 봤던 〈대부〉도 잊을 수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조조 상영을 하도 자주 봐서 2회차를 보려고 온 학과 친구들과 남포동이나 서면에 있는 극장들의 매표소 앞에서 마주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때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영화에 매긴 별점을 알려주곤 했다. 당시 유럽 예술영화를 포르노 영화로 오해한 무식한 수입업자들 때문에, 유럽 영화들은 서면의 복개천이라 불리던 지역에 있는, 좀 수상쩍은 분위기의 소극장들에서 주로 개봉하곤 했다. 그래서 혹시 만날지 모를 변태들에 맞서기 위해, 화창한 날에도 우산을 들고 유럽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젊었을 때 나는 그저 부산을 떠나고만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남은 인생을 이 도시와 함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자주 들곤 한다. 그래서 부산의 지난날을 한 번 살펴보니, 예외로 내 고향이 나와 닮은 점이 있었다. 부산의 역사는 한국 영화의 역사와 수시로 겹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은 한국에서 최초로 영화 제작사가 설립된 도시이며, 최근 발견되는 자료들은 부산에서 한국 최초로 영화가 상영되었을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알고 보니 부산도 나에 못지않은 영화광이었던 것이다!!
영화가 내 인생의 기쁨과 슬픔, 좌절과 희망의 순간을 함께 했듯이, 영화 도시 부산의 면모는 이 도시의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좌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에 더해, 이제 K 무비란 애칭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한국 영화의 미래까지, 이곳, 부산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까지 든다.
그래서 나는 별 친하지 않았고, 공통점도 없다고 생각했던 급우와 같았던 부산을, 우리가 함께 사랑하는 영화를 통해 이제부터 다시 알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부산이 그리는 영화의 지도를 따라가며, K 무비의 영원한 항구로 다시 빛날 부산의 미래를 같이 꿈꾸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