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은 갑옷 미늘 하나를 뚫지 못했고 말은 평생 편치 않았다.
그런 사람이 칠천을 끌고 낙양에 들어갔다.
양(梁)의 진경지(陳慶之)는 열넷에 남의 집 문가에 앉아 밤을 새우는 아이였다. 주인이 부르면 바둑판의 등잔 심지를 자르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주인이 황제가 된 뒤에도 이십 년 넘게 조회 뒤쪽에 서 있었다. 마흔둘에 처음으로 군사를 맡았고, 삼 년 뒤 북위(北魏)의 종실 하나를 임금으로 삼아 데려다주라는 명을 받는다. 붙여 준 군사는 칠천이었다. 낙양까지는 삼천 리, 그 사이에 성이 서른둘 있었다.
『양서』는 이 원정을 열여섯 자로 적는다. 「백사십 일에 서른두 성을 평정하고 마흔일곱 번 싸워, 향하는 곳마다 앞을 막는 자가 없었다.」 이 소설은 그 열여섯 자를 백사십 일로 되돌려 놓는다.
물을 건널 방법이 없는 성 앞에서 엿새를 세는 사람, 두꺼운 성벽을 닷새 동안 두께로만 보다가 담 잘 넘는 식객의 말 한마디에 비로소 높이로 보게 되는 사람. 이기는 자리마다 그가 한 일은 싸움이 아니라 따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따져서 안 되는 자리가 온다. 성이 열린 다음 날 오후, 마당에서 벌어진 일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돌아온 것은 혼자였다.
『난세열전』은 남북조에서 수(隋)까지, 한국에서 책 한 권 나온 적 없는 사람을 한 권에 한 사람씩 담는 시리즈다. 그 첫 권이 진경지다.
『양서』 권32 진경지전을 뼈대로 『남사』와 『자치통감』, 『낙양가람기』, 『위서』로 살을 붙였다. 인용한 사료는 원문과 옮긴 것을 본문에 함께 실었고, 지어낸 것은 지어냈다고 부록에 밝혔다. 권말에 북벌 경로 지도와 연표, 이 책에 나오는 사람 쉰 명 남짓의 설명, 낱말 풀이를 넣었다.
※ 이 책을 쓰고 다듬는 데 인공지능(Claude)의 도움을 받았다. 사료의 한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 연대와 사실이 서로 맞는지 확인하는 일, 맞춤법을 교정하는 일에 썼다. 사료의 내용을 이용해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저자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