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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화 이야기
글쓴이
최남선 저
출판사
북퍼브
출판일
2026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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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최남선

1890년 4월 26일 서울 출생. 본관은 동주(東州 : 철원). 자(字)는 공육(公六), 호는 육당(六堂).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한국 개화기 인문학의 선구자요, 신문화운동의 개척자로 출판사 ‘신문관(新文館)’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하여 수많은 서양의 고전 명작들과 한국의 고전들을 번역 소개하는 등 출판문화로 ‘문장구국(文章救國)’하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1908년 근대 종합잡지의 효시인 [소년]을 창간했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으며, 이후 [붉은 저고리] [아이들보이] [청춘] [새별] 등 많은 잡지를 발간했다. 1919년 3.1운동에 주동으로 참여,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민족대표 47인 중의 1인으로 체포, 2년 8개월간 복역하기도 했으며, 한국역사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43년 11월에는 일본 동경에서 학도병 지원 연설에 나오는 등 일제에 협력했다. 1949년 2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 수감되었고, 옥중에서 친일행위에 대한 해명과 속죄를 담은 [자열서(自列書)]를 제출했다. 1957년 10월 10일 [한국역사사전]을 집필하던 중 68세로 작고했다.
* [백팔번뇌(百八煩惱)](1926, 근대 이후 최초의 창작시조집), [단군론](1926),[시조유취(時調類聚)](1928), [심춘순례(尋春巡禮)](1925),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1925), [금강예찬(金剛禮讚)](1926), [풍악유기(楓嶽遊記)](1926), [백두산근참기](1926), [아시조선(兒時朝鮮)](1927), [삼국유사해제](1927), [살만교차기(薩滿敎箚記)](1927, 북방 샤머니즘 해설서),[육당최남선 전집] 15권(1973), [고사통(故事通)](1943), [조선상식문답](1947), [국민조선역사](1945), [역사일감(歷史日鑑)](1947) 등의 저서가 있다.

책 소개

분야역사
신화는 역사의 편린이다. 더욱이 신화는 지역을 뛰어넘어 문화적 보편성을 가진다. 천재적인 작가이자 부지런한 역사가였던 최남선은 이에 착안하여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 열도는 물론 아시아까지 넘나드는 폭넓은 시각으로 신화 속에서 우리의 가려진 역사를 발굴해내고자 하였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나라 신화에는 역사가 미처 남기지 못했던 태고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그가 1930년대 일제 치하의 엄혹했던 시기에 남긴 우리의 고대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러모은 것이다. 일본 유학의 경험까지 살려 한국의 신화와 일본의 신화를 직접 비교할 수 있었기에 자신이 가진 장기를 최대한 활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역사 연구에 바치기로 마음먹고 그 극단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였던 인물이었기에, 오늘날에도 우리 고대사를 바라보는 그 시각의 폭넓음과 지식의 방대함은 가히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 그가 대중을 상대로 이 글을 통해 우리 고대 신화에 있어 자신이 깨우친 바를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이처럼 우리 고대사의 부족한 부분을 신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깊이 있게 파고들었던 그의 작품을 오늘날 새롭게 복원함으로써, 단순히 한국의 신화뿐만 아니라 주변국까지 포괄하는 신화학의 지평을 열었던 그의 역작을 다시 접해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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