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왜, 왜 저예요?”
“응? 왜라니? 당연히 랜덤이지!”
지구는 내가 결정하는데, 내 인생은 왜 남들이 결정하지?
어느 날, 외계인이 대치동의 고등학생 공설린에게 찾아온다. 365일 뒤 지구를 멸망시킬지 말지 직접 결정해 달라는 통보와 함께다. 선택된 이유는 특별한 능력도 운명도 아닌, 그저 ‘랜덤’. 초능력도 사명감도 없는 열일곱 살이 갑자기 인류의 마지막 선택권을 쥐게 된다. 그런데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와중에도 입시는 멈추지 않는다. 영어학원, 수학학원, 그리고 새로 늘어난 일정까지. 세상의 끝이 와도 설린의 하루는 놀랄 만큼 평소처럼 흘러간다.
더 답답한 건 외계인보다 설린을 둘러싼 사람들이다. 정부는 보호한다며 일상을 관리하고, 언론은 설린의 하루를 콘텐츠로 만들고, 부모는 여전히 딸의 미래를 대신 설계한다. 모두가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 말 끝에는 저마다 설린이 골라주었으면 하는 답이 붙어 있다. 지구의 운명은 설린에게 맡겼으면서 정작 설린의 삶은 누구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대치동 파괴왕》은 지구 멸망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학원, 다이소, 코 수술, 새우깡 같은 너무 현실적인 일상을 한 화면에 겹쳐 놓는다. 그래서 웃기다가도 문득 뜨끔하다. 누군가 정해준 선택지와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이 한 번이라도 답답했던 사람이라면, 설린의 질문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구를 살릴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내 인생은 누구의 것일까?’로 향한다. 마지막 날, 설린이 고르는 것은 과연 지구의 미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