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1월, 독일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킬대학 재정학 강의실에서 나는 교수님과 논쟁 중이었다. 동서독이 통일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뒤여서, 재정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돈이 들어갈 곳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동독 지역 경제개발 자금이고, 다른 하나는 구동독 주민들의 생활보장 자금이었다. 통일이 되었으니 구동독 지역 주민들에게도 서독 지역 주민들과 동일한 사회보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그날의 토론 주제였다. 서독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사회보장 자금을 하나씩 열거하며 항목별 재정 지출을 점검하던 중이었다. 서독 지역 생활보호 대상 가정에는 아이들을 위해 일 년에 두 차례씩 의복비가 제공되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비를 준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헤어(Herr) 윤, 왜 웃지?” “교수님, 크리스마스 선물비까지 사회보장비로 주면 누가 일합니까? 이렇게 하니까 독일이 미국보다 성장률이 뒤떨어지는 것 아닌가요?” 내 질문에 교수님이 발끈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이랬다. “미국은 경제성장률이 높아져도 그 부는 일부에게만 간다. 그러나 독일의 경제성장은 국민 전체의 삶을 개선한다. 높은 성장률이 최고의 정책목표는 아니다. 우리는 미국과 철학이 다르다. 생활보호 대상 가정에 크리스마스 선물비를 주는 이유는, 독일의 가장 큰 명절에 부모와 아이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사회가 함께 지켜주기 위해서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날 교수님의 말씀은 오래 남았다. 성장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의 삶을 바꾸는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물음은 다름 아닌 내 나라의 물음이 되었다.
지표만 보면 우리는 성공한 나라다.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섰고, 세계는 그 속도를 기적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 성공한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하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내 집 마련은 멀어지고, 노후는 불안하고, 청년은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나라는 부유해졌는데 내 삶은 왜 이렇게 늘 빠듯한가. 이 책은 바로 그 간극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이 질문들에 익숙하다. 너무 익숙해서, 어느새 풀 수 없는 문제로 체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값, 사교육, 노인 빈곤, 비정규직, 지방소멸- 이름만 대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문제들이 수십년째 반복된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새로운 대책이 나오지만, 몇 해가 지나면 문제는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가 진단과 처방이 어긋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구조의 문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제도와 관행이 쌓이며 만들어진, 깊고 단단한 구조의 결과다. 그런데 우리의 처방은 짧고, 대증적이고, 단편적이다. 5년이라는 임기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정치는 구조를 건드리는 대신 증상을 누른다. 그렇게 같은 처방이 반복되고, 같은 실패가 반복된다. 게다가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성장률은 내려앉고 인구는 줄어드는데, 정작 구조를 바꿀 용기를 내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는 구조를 보는 눈으로만 풀린다. 그리고 나는 그런 눈을 독일 경제학의 오래된 전통에서 발견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 구스타프 슈몰러, 발터 오이켄- 이들은 시장을 추상적인 수요 · 공급 곡선이 아니라, 역사와 제도 속에서 작동하는 살아 있는 질서로 보았다. 독일 역시 후발 산업국으로서 우리와 닮은 고민을 했고, 시장을 방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쟁했다. 그리고 그 나라를 현실에 구현하려면 어떤 질서를 세워야 하는가를 끈질기게 물었다. 이 책이 독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의 제도를 그대로 옮겨 오자는 뜻이 아니다. 독일이 자기 문제에 던졌던 질문을, 우리 문제 위에서 다시 던져 보자는 것이다.
독일 경제학이 이런 큰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일에서 경제학은 정치학 · 법학과 함께 ‘국가학(Staatswissenschaft)’, 곧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학문으로 불린다. 경제학이 국민의 삶을 위한 학문이라면, 정치학은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학문이고, 법학은 그 합의를 제도로 굳히는 학문이다. 실제로 한때는 하나의 법학연구소 아래 경제학부와 정치학부가 함께 자리하기도 했다. 한 사회가 지향하는 나라를 만들려면 이 세 학문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고, 그러자면 공동의 지향점-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합의-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이 추구하는 목표가 정치와 법률의 영역에서도 공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바로 그 공동의 지향점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내가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썼다. 나는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10년 넘게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독일의 국민경제학 (Volkswirtschaftslehre)은 교과서 몇 권으로 정리되는 학문이 아니라, 그 사회의 역사와 사고방식 안에서 자라난 학문이다. 그 안에 오래 머물러 본 사람만이 전 할 수 있는 결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독일을 칭송하려는 것도 아니고 독일이 모든 것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와 경제를 둘러싼 기술이나 국제관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경제정책과 제도도 그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같은 철학과 목표하에 이루어져야 동일한 방향성을 가지고 성과가 축적될 수 있다. 독일 경제학은 이 전통을 만들었다. 이 전통을 한국의 문제에 연결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진단에서 멈추지 않는다. 저성장, 노동시장의 분절, 부동산에 묶인 자산,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 우리 경제의 통증을 하나씩 짚은 뒤, 그 통증을 만들어 낸 구조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로 나아간다. 나는 이 문제들이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인이 있다면 해법도 있다. 다만 그 해법은 더 깊은 곳에서, 더 긴 시간을 두고 보아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이 책으로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우리가 끝내 풀지 못해 좌절해 온 문제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풀어 갈 수 있는지를 차분히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끝에 작은 가능성이라도 보인다면, 그래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조금 더 나은 나라를 건넬 수 있다면, 이 책은 제 몫을 다 한 것이다.
이 책이 있기까지 도와준 분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구상하던 단계에서부터 경기도일자리재단 동료들의 자문과 논평이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임수철 단장, 허정은 본부장, 임은실 팀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출판을 맡아준 박영사에도 감사한다. 장규식 부문장님의 세심한 협력과 한도결 선생님 의 꼼꼼한 편집작업에 큰 인사를 드린다. 물론 책의 미진한 부분은 모두 저자의 부족의 소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