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보고 배우는 사람과 남이 되려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넘기다 보면 동기의 승진 소식이 올라옵니다. 누군가는 창업에 성공했고 누군가는 먼 나라에서 웃고 있습니다. 화면을 닫고 창밖을 보면 오늘 하루 내가 한 일이 초라해 보입니다. 천팔백여 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짧고 강렬하게 타올랐다 스러진 뒤,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아 강동을 물려받은 손권입니다.
『모든 비극은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삼국지략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으로, 조조와 유비, 제갈량이 차례로 무대에서 내려가는 동안 끝까지 강동을 지킨 손권의 반세기를 따라가는 인문 에세이입니다. 형의 시신 앞에서 울음을 거두고 말에 오른 날, 다섯 군뿐이던 땅, 합비에서 물러나다 끊어진 다리 앞에서 얻은 깨달음, 적에게 고개를 숙여 벌어 둔 시간이 장면마다 펼쳐집니다. 저자는 각 장면을 오늘의 회의실과 퇴근길로 옮겨 와 우리 삶에 겹쳐 보게 합니다.
책은 다섯 갈래로 나뉩니다. 비교에서 벗어나 자기 영토를 세우는 법, 자존심을 내주고 생존을 얻는 거래,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용인술, 적의 적을 끌어들이는 연대, 공격보다 지키는 일로 끝까지 살아남는 수성입니다. 사료의 출처를 밝히고 전해 오는 이야기와 정사의 기록을 구분해 쓴 점도 눈에 띕니다. 저자는 손권을 흠 없는 영웅으로 그리지 않고 동맹을 저버린 일과 말년에 벌어진 이궁의 다툼까지 함께 다룹니다.
이 책이 건네는 것은 비교를 멈추라는 훈계가 아닙니다. 남을 보고 배우는 일과 남이 되려는 일을 가르는 기준, 그리고 내 손에 남은 것을 헤아리는 구체적인 질문들입니다. 꼭지마다 끝 무렵에는 오늘 밤 종이 한 장에 적어 볼 수 있는 작은 실천이 놓여 있습니다.
남의 강물은 언제나 더 넓고 푸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곳은 내 발밑의 흙뿐입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오늘 내 손에 남은 것을 한번 세어 보고 싶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