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처럼 생긴 고대 기호를 보고 뜻을 맞혔다면 문자를 해독한 것일까. 갑골의 선, 점토판의 쐐기, 비문의 반복된 이름은 모두 단서를 남기지만, 기호 하나가 무엇을 닮았는지만으로는 언어를 읽을 수 없다. 사라진 글자를 읽는 과정에는 음가와 의미, 반복과 문법, 가설과 반증을 분리하는 긴 노력이 숨어 있다. 이 책은 암호를 풀듯 고대 문자를 단숨에 해독한 천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증거를 연결한 역사를 따라간다. 문자의 해독은 한 번의 영감으로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자료가 등장할 때마다 새 가설이 기존의 설명을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하는 역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점토와 돌, 모사본과 실제 유물의 차이에서 출발해 기호의 분포와 왕명, 고정된 문구가 해독의 출발점이 된 까닭을 살핀다. 로제타석과 카르투슈의 이름, 베히스툰 비문의 세 언어, 쐐기문자가 서로 다른 언어를 기록하는 방식이 차례로 등장한다. 어떤 가설은 이름의 소리를 설명했지만 문장 전체의 뜻까지 풀어 내지 못했고, 어떤 해독은 낱말 끝의 반복을 문법과 연결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선문자 B를 읽는 데 필요했던 비교와 검증, 아직 해독되지 않은 선문자 A와 원시 엘람 문자가 남긴 불확실성은 지적 탐구의 흥미를 더한다. 기록 속에서 물품의 종류를 알아보는 것과 그 기록이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 아는 것은 다르다. 해독에 성공했다는 선언을 무엇으로 시험해야 하는지, 서로 다른 연구자가 자료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지까지 묻는다. 나아가 새긴 사람과 기록을 보관한 사람, 현대에 읽는 사람 사이의 권리와 책임도 다룬다.
고대사와 언어학, 고고학에 관심이 있지만 어려운 문자표와 언어 기호가 막막했던 독자를 위한 탐색의 안내서다. 문자에 담긴 뜻을 외우는 대신 무엇을 근거로 뜻을 알아냈는지 따라가 보자. 읽히지 않던 표식이 문장이 되는 과정뿐 아니라 아직 읽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의 정직함도 발견하게 된다.